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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아침방송에 드라머·만화영화는 재고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꼭 보고싶어서라기보다 봐야만 하겠기에(이 원고를 써야하는 까닭으로) TV 아침방송 첫날, TV를 켰다가 질겁을 해서 꺼버린 일이 있다.
방송국 측이 내건 구호가 「국민 생활에 필요한 각종 정보와 교양 확대」이기에 막연히 시사성 있는 프로를 기대했다. 예상과는 달리 화면 가득 펼쳐진 것은 만화영화-. 안 그래도 저녁 어린이 시간의 만화만으로도 골칫거리가 충분한데 아침부터 또 만화라니-. 아이가 눈치 채기 전에 황급히 꺼버리는 것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집마다 아이들이 아침마다 치러야하는 일과들-세수하고-밥 먹고-등교 준비하는-과 만화영화의 갈등(?)은 날로 심각해지는 모양이다.
아이들을 가긴 주부들은 입만 열면 『아침 만화 때문에 못살겠다』고 사뭇 비명이다.
식사시간과 만화 방영이 겹치면 아예 밥그릇을 들고 TV앞에 앉아 기계적으로 밥을 퍼 넣는다.
저녁 한번으로서도 참기 어려운 고역을 이젠 아침저녁으로 치러야 하다니 식탁에서의 단란함이 깨어지는 것쯤은 고사하고 이 나라의 어린이 모두가 소화불량에다 만년 지각생이 되어도 괜찮다는 이야기인가?
겨우 아이를 등교시키고 설거지도 청소도 미뤄놓은 채 다시 켠 화면에선 두 채널 모두 매일연속극이 방영되고 있었다.
한 채널에선 부자집 예쁜 여대생 딸이 모든 것이 시시해서 죽고 싶다고 건방을 떨고 있었고(MBC 포옹) 또한 채널에선 별거중인 중년부부가 술을 퍼마시며 서로를 힐책하고 있었다(KBS 은하수).
도대체 방송국 양반들은 한국의 주부들을 뭘로 아는 것일까?
아침 8시부터 시시한 드라머나 꼬박꼬박 챙겨볼 만큼 할 일 없고 한심한 존재라는 말인가.
애초 상오 6시부터 10시까지라는 방영시간도 시청자들의 생활리듬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처음 내건 구호와는 먼 내용의 프로들을 계속 낸다는 건 전파의 낭비요, 시청료의 낭비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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