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강원도 명물 옥수수 엿 평창군 진부-대화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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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찰칵』 『찰칵』 엿가위를 절거럭 거리며 엿판 진 엿장수가 동네 어귀에 나타난다.
어린 시절 엿장수가 오는 날이면 어머니 치마끈을 붙잡고 졸라대 빈 참기름 병이나 부러진 부젓가락을 주고 바꿔 먹던 즐거움이 엿가위소리에서 되살아난다.
지금처럼 사탕·과자 등 주전부리 감이 흔하지 않았던 옛날 우리 나라에 단맛 내는 과자는 엿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엿은 우리 나라 고유의 과자인 셈이다.
엿이라고 하지만 재료에 따라 찹쌀엿·수수엿·감자엿·좁쌀엿·옥수수엿이 있고 엿이 굳기 전에 넣는 감미에 따라 호두엿·호콩엿·깨엿·잦엿·호박엿·생강엿·박하엿·계피엿 따위가 있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대화면은 무진장으로 생산되는 강원도의 명물 옥수수를 원료로 하는 옥수수엿의 본 고장.
『달면서 구수하고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고 속이 타지 않는게 평창 옥수수엿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사탕이다 과자다 콜라 사이다 아이스크림 등 별의별 주전부리 감이 다나와 그만 사양길에 접어든 것 같아요.』
상진부 3리에서 20년간 엿을 고는 황태상씨(42)의 푸념이다.
한때는 대화·진부면을 중심으로 농가마다 겨울철 농한기를 이용, 옥수수엿을 생산했으나 차츰 자취를 감추고 이제는 몇몇 공장에서만 옥수수엿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엿 가마솥에 불을 지피는 온도와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것이 옥수수엿의 맛을 살리는 길이지요.』
먼저 대형 철제 가마솥(가로2·4m, 세로·깊이 1·2m)에 맹물 90초롱(4갤런들이)을 붓고 2시간 가량 끓여 온도를 81도로 높인다.
물을 덥힌 후 옥수수가루 15가마(1가마 70kg짜리)를 풀고 여기에 액화효소(가마당 6백g)를 섞은 다음 95도 정도로 온도를 높여 3시간 가량 끓인다.
여기에 찬물을 부어 65도 정도로 온도를 낮춘 뒤 당화 효소(가마당 5백g정도)를 넣어 5∼6시간 잠을 재워둔다. 잠을 재우면서도 온도가 항상 60도 이상이 되도록 화부는 계속 아궁이에서 불을 지펴야 한다.
『새벽에 늦잠을 자 시간이 지나게되면 엿물 맛이 시어져 변질되고 맙니다.』
엿죽의 도수가 1∼2도 틀리거나 옥수수가루에 덩어리가 남아 제대로 삭지 않으면 풀이돼버려 조청이 타거나 누렇게 변질해 엿을 망치게 된다는 것이다.
『노동 가운데 먹는 음식 만드는 것이 가장 힘들지요.』
엿을 만들 때 석씨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새벽 3∼4시에 꼭 일어난다.
체로 맑게 걸러낸 노란 엿물을 철제 가마솥에 넣고 펄펄 끓여 졸인다.
엿물을 6시간 가량 졸여 걸쭉한 엿죽이 되면 바로 이것이 조청.
진부 갈비집(평창군 진부면)주인 김선희씨(46·여)는 『갈비찜을 잴 때 옥수수엿 조청을 쓰면 고기가 연해지고 윤기가 돌아 갈비의 제 맛을 살린다』면서 옥수수엿 조청이 갈비 재는데는 그만이라고 일러준다.
조청으로 쓸 엿죽을 따로 떠내고 다시 2시간 가량 졸이면 검붉은 색의 엿이 된다.
뜨거운 엿죽을 식힌 후 엿판(가로30cm·세로20cm)에 부어 모양을 뜬다.
가을 겨울철에는 매일 작업을 해 하루 1백80관의 엿물을 만들어낸다.
황씨가 엿 기술을 배운 것은 20세 때부터. 우연히 원주에 있는 엿 공장에 들어가 이 기술을 배우게돼 생업으로 삼게됐다.
5년 동안 엿 기술을 익힌 황씨는 『진부지방에 제재소가 많아 톱밥이 무진장이니 톱밥으로 엿을 과 보라』는 친구의 권유로 진부에 정착했다.
당시만 해도 톱밥은 져다 버릴 정도로 남아돌아 공짜로 얻어다 연료로 쓸 수 있었다.
60년대만 해도 연료비가 전혀 들지 않은데다 지금처럼 과자들이 대량생산되지 않은 때여서 옥수수엿의 전성기였다.
『그 때는 매달 인제·속초·강릉·양양 등지 판매소에 수금을 가면 3, 4백만원씩을 수금해 앞뒤로 돈 가방을 차고 다닐 정도로 장사가 잘됐습니다.』
풀무를 직접 돌려 불을 때야했기 때문에 하루 옥수수 6가마정도밖에 엿을 만들지 못해 불티나듯 팔려나갔다는 것.
그러나 70년대 들면서 유명 메이커들의 과자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의 기호도 점차 변해 엿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 판로가 좁아지고 있다.
황씨는 『판로가 막혀 강릉 등지 단골 도매상이나 고물상 정도에 엿을 대줄 정도』라면서 오대산 월정사 등 관광지 관광객들에게 특산물로 인기가 좋아 그나마 유지되는 실정이라고 털어놓는다.
황씨의 한달 순수입은 30만∼40만원 정도. 연간 1백80t(9천여만원)을 생산하고 있다.
진부면 이익성 할아버지(78)는 『젊었을 때 늙은 부모에게 옥수수 강엿 한 덩어리를 사다드리면 효자소리를 들었다』며『옥수수엿이 점차 없어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평창=정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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