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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월요일] 종가의 자존심 '닭실한과' - 달콤한 고집 42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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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닭실마을에선 한과를 만드는 데 기계 대신 수작업을 고집한다. 한과에 들어간 ‘닭실종가’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란다. 그러다 보니 작업 과정에서 손이 많이 간다. 기름에 지지고 조청을 바른 유과에 튀긴 쌀을 고루 묻히는 손길이 분주하다. [봉화=프리랜서 공정식]

지난달 26일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닭실(달실)마을.

 마을로 들어서자 ‘닭실한과’란 안내판이 보인다. 설과 추석 때면 한 번쯤 듣는 이름이다. 기와집이 늘어선 마을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종가를 먼저 찾았다. 닭실마을은 충재 권벌(1478~1548) 선생이 터를 잡은 이후 안동 권씨의 집성촌이 됐다. 마을 전체 37가구 중 귀농한 두 가구를 빼고는 모두 안동 권씨다. 충재의 19대손 권용철(42)씨를 만났다. 아버지를 이어 다음 종손이 될 사람이다.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 근무하다가 종가 옆에 7년 전 ‘충재박물관’을 지으면서 내려왔다. 닭실한과의 유래를 묻자 용철씨가 부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닭실한과엔 닭실마을의 역사가 담겨 있다. 충재박물관에 전시된 체엔 ‘앗겨 쓸지어라 만사대길하리라 기사년(1929년) 12월 구입하였으니 주인 종택’이라고 적혀 있다.

 부인 권재정(40)씨는 한과가 충재 선조의 불천위(不遷位·나라나 유림에 큰 공을 세워 영원히 제사를 지내도록 허락된 신위) 제사에 올리던 음식에서 유래한다고 설명했다. 조선 중종 때 병조판서·예조판서 등을 지낸 충재는 사후 44년 만인 1592년 불천위가 됐다. 그러고 보면 닭실한과의 역사는 420년이 넘는다. 장차 종부가 될 권재정씨는 예천 권씨다. 권재정씨는 이미 종가 살림을 살고 있다. 4년 전 종부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종가에 내려오는 제사 음식을 만들 때 쓰는 도구 몇 점을 연못의 거북 형상 바위 위에 세워진 청암정(靑巖亭)에서 볼 수 있었다. 체와 다식판, 나무로 된 큰 주걱이었다. 홍두깨와 떡판은 무거워 내오지 못했다. 음식을 저을 때 쓰는 주걱은 왼쪽이 많이 닳아 있었다. 체의 둘레에는 ‘앗겨 쓸지어라…’로 시작하는 부녀자 글씨가 적혀 있다.

 다식판은 세 종류였다. 가장 오래된 것은 물고기와 매화·국화 등 꽃 문양 다섯 개가 돋을새김으로 파여 있었다. 그 위에 문양 모양대로 구멍이 파인 틀이 하나 더 있다. 덮개를 덮고 떡살을 넣으면 물고기나 꽃 모양 다식이 만들어진다. 나무 주변에 검게 덮인 흔적이 연륜을 짐작하게 한다. 차종부(다음 종부가 될 사람)는 “300년은 족히 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닭실마을 한과 작업장의 권씨 집안 며느리들이 오전 일과를 마치고 잠시 쉬면서 한과를 맛보고 있다.

 또 하나 다식판은 방망이처럼 아래에 손잡이가 있고 그 위에 다섯 가지 문양이 파여 있다. 붉은빛이 도는 나무다. 뒷면에 글자가 반듯하게 새겨져 있다. ‘증 종택용 신축 8월 1일 묘곡 꼬게택 증’이란 글씨가 선명하다. 종택에서 쓰도록 토끼골에 사는 꽃게댁이 다식판을 기증한다는 뜻이다. 차종부는 꽃게댁이 누구인지 몰랐다. 한과 작업장에 물으니 꽃게댁은 올해 96세인 이 마을 어르신이다. 신축년은 1961년. 종가에 기증한 게 벌써 50년이 지난 것이다. 닭실마을 사람들의 종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이처럼 유별나다.

‘닭실한과’ 어떻게 만드나 닭실한과 를 만드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① 우선 찹쌀을 물에 불려 곱게 갈아서 찐다. ② 반죽을 얇게 펴고 조각으로 잘라 말린뒤 ③ 너무 뜨겁지 않은
기름에 튀긴다. ④ 그 다음 조청을 묻히고 튀긴 쌀을 입힌다. ⑤ 튀긴 찰벼와 건포도로 장식하고 ⑥ 대바구니에 곱게 포장한다.

 음력 3월 불천위 제사가 가까워지면 종부는 한 달 전에 술을 담근다. 제사 음식은 사흘 전부터 준비하고 제사를 앞두고는 며느리들이 모여 동곳떡을 만든다. 동곳떡은 보통 제사상에 오르는 시루떡과는 만드는 방법도 다르고 모양도 특이하다. 아래에는 절편을 잘게 나눠 빚은 다음 둥글게 한 층씩 쌓아 올린다. 높이는 충재 제사에 25층을 쌓다가 지금은 음복할 제관이 60여 명으로 줄어들어 19층으로 낮췄다. 동곳떡을 만들려면 적어도 8명이 달라붙어야 한다. 쌀가루를 반죽해 잔 절편을 만들고 다시 동곳(상투를 튼 뒤 풀어지지 않도록 위에 꽂는 장식) 모양으로 둥글게 쌓는다. 높이 쌓기 때문에 반죽도 적당해야 하고 쌓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8명이 손발이 맞아야 제 모양을 드러낸다. 며느리들이 제사를 통해 단합을 배우는 ‘화합과 조화의 떡’이다.

 차종부의 이야기를 들은 뒤 한과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말린 유과를 기름에 지지느라 60, 70대 권씨 집안 며느리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추석 대목을 맞아 연일 오후 10시가 넘어 끝이 난다. 지진 유과는 옆방으로 옮겨져 조청을 바른 뒤 튀긴 쌀을 고루 묻힌다. 4년 전 찾았을 때와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있다면 연로해져 그 사이 한과를 만드는 닭실부녀회원이 18명에서 9명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추석에는 주문 물량도 지난해보다 줄어든 300여 개로 맞췄다. “돈벌이는 무슨…. 주문이 들어오니 그저 배운 그대로 정성껏 만들어 보내는 거지.” 전통을 잇다 보니 닭실한과는 물엿 대신 조청을 쓰고 방식도 기계 대신 수작업을 고집한다. 부녀회 박정자(63) 회장은 “조청을 써야 옛 맛이 나기 때문”이라며 “한과에 ‘닭실종가’란 이름이 들어가니 종가의 명예가 걸려 있다”고 말했다. 몇 년 전엔 재료를 잘못 구입해 중국산이 섞여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어르신들은 그 흔한 화투놀이도 모른다. 틈나면 가사를 짓고 부른다. 마지막 작업은 맨 위에 올리는 유과에 꽃무늬를 놓는 일이다. 세 잎 꽃무늬는 찰벼를 튀겨 만들고 가운데 건포도가 들어간다. 닭실한과에만 있는 문양이다. 가장 젊은 사람의 몫이다. 박 회장은 마지막으로 대바구니에 유과·약과를 차곡차곡 넣은 다음 보자기를 싼다. 한과 역시 충재 종가의 화합이 빚어내는 음식인 것이다. 한쪽 책상 위에는 택배로 한과를 보낼 주문처가 공책에 빼곡히 적혀 있다. 점심·저녁 시간을 빼고 분주히 손을 놀려도 하루 30바구니 만들기가 빠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마을 남정네들은 한과 일을 돕지 않는다. 도시에 나가 있는 자식들은 추석이 되면 종가에서 만난다. 주문 전화가 이따금 걸려 왔지만 박 회장은 정중히 거절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일하지만 건조 등 한과 작업이 일주일씩 걸려 더 이상은 만들 수 없어서다.

봉화=송의호 기자

며느리 8명이 함께 빚는 동곳떡

음력 3월 불천위 제사를 앞두고 닭실마을의 안동 권씨 며느리들은 동곳떡을 만든다. 절편을 잘게 빚어 한 층씩 쌓아 올린다. 높이 쌓으려면 떡 반죽도 중요하지만 쌓는 것 자체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 8명의 며느리는 이렇게 동곳떡을 빚고 쌓으며 화합과 조화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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