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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학술지 게재, 피인용 횟수 비중 늘리는 방안 모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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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호 02면

일러스트=강일구

“연구 과제를 얻거나 교수에 임용되려면 서포카(서울대-포항공대-KAIST) 출신이냐, CNS(셀-네이처-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했느냐를 묻습니다. 이제는 학교와 논문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 것 같아요.”

이공계 논문 평가 중심주의 개선 방향

 한 출연연 소속 연구원의 씁쓸한 고백은 우리나라의 현 과학기술 주소를 돌아보게 한다. 교수 임용, 학교 평가, 연구과제 배분 등 국내 과학기술계의 모든 평가는 논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정부는 국내 연구진의 SCI 게재 논문 건수를 해마다 발표한다. 그 수는 해 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반면에 과학계 내부에서는 “논문에 몰입됐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논문 위주의 심사는 다양한 문제를 야기한다. 대학은 논문을 낼 만한 연구에 매달려 정작 활용 가능한 인력 양성에 실패한다. A대학 기계공학과의 경우, 전통적인 기계공학을 하는 교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바이오기계공학 등 응용 학문을 전공한 교수가 대부분이다. 교수 임용 기준에 SCI 논문이 포함되면서 빚어진 일이다.

 논문에 실릴 만한 발견이나 연구는 새로운 분야에서 나온다. 그 때문에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논문을 싣는 것도 상대적으로 쉽다. 문제는 이런 응용과학이 아직 실질적인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데 있다. 졸업자의 연구 진출이 제한되고, 일반적인 국가 기반산업을 연구하는 인력 양성이 약화되는 문제도 뒤따른다.

 보통 기계나 전자계열과 같은 공학계열은 SCI 저널이 생명이나 의료 쪽에 비해 적고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SCI 게재 논문 수와 같이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하게 되면 객관적인 평가나 인정을 받기 어렵다. 논문 수가 중요시되는 풍토에 결과를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새 분야를 연구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논문이 갖는 권위가 높아지면서 ‘학술지의 폭정’‘저널장사’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국제 학술지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국내 학술지는 게재 논문을 얻기 위해 목을 매는 등 ‘논문의 빈부격차’도 문제시된다.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랜디 셰크면 UC버클리대 교수는 이런 움직임에 반발해 영국 일간지 가디언을 통해 “네이처나 셀, 사이언스와 같은 저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싣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앞서 세계 각국의 과학자와 주요 과학단체는 연구결과에 대한 심사를 거부한다는 ‘샌프란시스코 선언’으로 연구의 질과 영향력을 평가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공유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또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산업기술 혁신 계획을 통해 논문 없이도 박사학위 취득이 가능하도록 한데 이어, 올해부터 산학연 관계자 20명이 참가한 ‘공과대학 혁신위원회’를 열고 현행 논문 위주의 심사 체계를 단계적으로 완화하기로 한 것.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동국대 화공·생물공학과 이의수(한국공학교육학회장)교수는 “국내 학술지의 평가 비중을 늘리고, 논문의 양이 아니라 피인용지수 등 질적 성과를 평가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학교 간의 실력 차가 있고 학생들의 자립도를 평가하는 데도 논문이 기준이 되는 만큼 학생까지 (논문 제한을) 적용하는 부분은 조심스럽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박정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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