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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닥터] 금속 인공관절 부작용 세계 최초로 밝혀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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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호 22면

“니켈 소재의 귀고리나 반지에 알레르기 일으키는 사람이 많아요. 인공관절 소재인 코발트가 니켈과 비슷한 성질이므로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28>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 박윤수 교수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 박윤수 교수(58)는 같은 병원 피부과 양준모 교수의 말에 귀가 번뜩였다. 박 교수는 성공적인 수술 뒤 통증을 호소하며 절룩거리는 일부 고관절 (엉덩이관절) 환자 때문에 머리가 하얗게 셀 지경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망가진 고관절 대신 미국에서 개발한 코발트·크롬 합금의 금속 인공관절을 이식 받은 환자들이었다.

박 교수는 2004년 이런 환자들의 부작용 사례를 모아서 국제 학회에 발표했다. 금속이란 이물(異物)이 환자에게 염증과 통증을 유발하고 심지어 연결된 뼈를 녹이기도 한다는 그의 주장에 다른 나라 의사들이 수군댔다.

태국에서 열린 인공관절 심포지엄에선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저명 의사가 조용히 다가왔다. 그는 “주위의 의사들에게 물어봤는데 그런 부작용은 없었다”며 “당신의 생각이 틀린 것 같으니 수술영상과 통계자료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말이 요청이지 ‘은근한 협박’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인공관절 회사의 자문의사였다.

박 교수는 이듬해 7월 관절수술 분야의 최고 권위지인 ‘골관절수술지(JBJS)’에 금속 인공관절의 부작용 사례 10건을 보고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지금까지 다른 학자들에 의해 무려 246번 인용됐다. 이후 학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의 그 의사도 나중에 만난 뒤 “내가 잘못 해석했다”고 항복했다. 금속 인공관절을 만든 회사인 ‘존슨 앤 존슨’사(社)는 손해배상과 재수술비로 40억~50억 달러(약 4조~5조원)를 써야 했다. 처음에는 15억 달러를 예상했지만 피해 사례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박 교수는 이 논문 발표 뒤 국제학회의 단골 초청 의사가 됐다. 다른 나라 의사들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스타 의사’가 됐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환자들이 수술 후 벌떡 일어나는 모습에 반해 정형외과를 택했다. 수련과정과 군의관을 거친 뒤 3년 반 동안 서울의 강남시립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시민들에게 온갖 정형외과 수술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연구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다. 박 교수는 주말에 우연히 서울 대모산을 등산하다가 삼성서울병원이 터를 닦는 것을 보고 ‘이곳이 내가 가야할 곳’이라고 마음을 정했다. 그는 병원에서 의사를 공모하자 피부과 양준모, 외과 전호경 교수 등과 함께 곧바로 지원했다.

삼성서울병원 개원 전 그는 캐나다 토론토병원 정형외과 휴 카메론 교수의 문하로 들어가 내공을 쌓았다. 수술을 직접 하면서 의술을 배우려면 그 나라의 의사 면허증이 필요했다. 밤새 공부해 캐나다 의사 면허증을 땄다.

박 교수는 1994년 8월 삼성서울병원 개원 멤버로 정형외과에 합류했다. 2년 뒤부터 고관절 환자만 보기 시작해 지금까지 8000여명의 환자에게 인공관절을 심어 주었다. 그는 내·외부 공기가 차단되고 멸균 상태를 유지하는 인공관절 전용수술실에서 우주복과 비슷한 수술복을 입고 수술한다. 인공관절 전용수술실의 수술 감염률은 0.1% 미만으로 세계 최고 수준 병원의 0.3~0.5%보다 훨씬 낮다.

그는 수술 실력과 연구 능력 모두에서 명성을 얻었다. 2008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인공관절학회의 조직위원장을 맡아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지난해엔 대한고관절학회 회장으로 선임됐다.

또 미국인공관절학회 정회원이 됐다. 올해엔 국제고관절협회의 정회원이 됐다. 2006년과 2012년엔 대한정형외과학회 학술상을 받았으며 2008년엔 대한의사협회 의과학상과 대한고관절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박 교수는 수술 부작용을 줄이는 의료기기의 개발에도 부지런히 나서고 있다. 2000년부터 서울성모병원 김용식, 서울대병원 김희중 교수 등과 함께 국산 인공 고관절을 개발했다. 이 국산 고관절은 2007년 상용화에 성공했다. 2009년부터는 값싸고 빠른 수술용 로봇의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해엔 자신의 논문 때문에 막대한 손해를 입은 ‘존슨 앤 존슨’에서 러브콜이 왔다. 인공관절을 설계하는 자문의사단에 합류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자문의사단 10명 가운데 아시아 출신으론 박 교수가 유일하다.

이성주 코메디닷컴 대표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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