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수석 애호가들 줄 잇는 전국 최대 적옥석 산지 울주군 범서면 두서면 일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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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돌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의 마음이라고 했다.
한 점 돌덩이에서 자연의 신비를 감탄하고 인생의 무한한 암시를 터득한다.
그래서 한 점 돌을 놓고 무량의 세계에 살며 구름과 안개가 머무르다 흘러가는 이치를 깨달으니 돌을 사랑하는 수석의 정체는 덕자의 길이라 했다.
울산에서 언양쪽으로 강줄기를 따라 우당탕탕 머리 받히는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남짓 달리다보면 태화강 중허리쯤에서 조는 듯한 강촌을 두엇 만난다.
경남 울주군 범서면 입암리와 두서면 미호리. 봄·여름·가을 세 계절에 수석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적옥석 산지로 유명한 마을이다.
『한여름 밭에서 김을 매다보면 저 아래 돌밭에서 꼬챙이로 돌들을 뒤집기도 하고 파보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처음엔 저 돌밭에서 고구마라도 나는가 이상히 생각 안 했습니까.』입암리에 사는 이흥규씨(46)는 한 겨울 눈 덮였을 때 빼고는 1년 내내 2∼3명씩 짝을 지어 돌밭을 갈다가는 저녁 어스름해서야 돌 몇 점을 소중스레 안고 가는게 지금도 이상하다는 눈치였다.
『그런데 그게 묘하긴 묘합디다. 언젠가 우리 집에서 저녁을 드시고 간 양반이 들고 온 돌은 꼭 말로만 듣던 백두산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호랑이 머리 같기도 한 게….』
입암리 범서천 일대에서 나오는 돌은 기암절벽과 괴봉이 첩첩한 축경미의 산수경석.
그 아래 백호천 일대에선 예부터 길석으로 치는 적옥석이 숨겨져 있다.
적옥석은 석영미립자에 철분이 들어 형성된 것으로 서양에선 준보석으로 치고 우리나라 애석인들에겐 미석으로 통한다.
미호천의 적옥석은 계혈색과 자색이 주종. 『수석은 먹색이다』하는 생각을 바꾸어 놓는다. 방금 친 닭 목에서 나온 뜨거운 피색깔 같기도 하고 동짓날 잡귀 물리친다고 집안 구석구석 뿌리는 팥죽 색깔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탐석하고 애석하는 취향은 문헌상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에는 1천3백년전인 서기692년에 당승 승세법사가 금오산에서 괴석 80여점을 거느리고 화엄경을 강론했다는 기록이 보이고 또 추사도 기석을 즐겨 그 제자인 주계가 스승의 돌 한점을 얻는데 5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석인구는 60년대 초에 많이 늘어 전문인만 줄잡아 6만∼7만명에 이른다.
적옥석 산지를 안내해 준 애석인 김종한씨(45·아동문학가·울산시 복산동573)는『미호천에서 나오는 색깔들은 자연마모석과 모암 파편의 두 가지로 50여년 전 상류계곡에 광산이 있었기 때문에 그 파편이 수 없이 흘러 들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석의 산지로 첫번째 꼽는 곳은 남한강주변의 양평·여주·단양·충주일대.
이곳의 돌들은 피부가 고운데다 수석의 근본으로 치는 산수경석류의 일품석을 비롯, 다양한 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밖에 낙동강 상류인 하암천 일대 점촌과 가은 주변의 산수경석, 경북 함덕·청송의 꽃무늬가 새겨진 화문석 등 전국 곳곳에 수석산지가 골고루 퍼져있지만 한곳에서 다양한 돌들이 많이 나기로는 이곳 범서천과 미호천을 중심으로 한 울산시와 울주군 일대가 단연 으뜸이다.
울산시만 해도 주전동 바닷가의 묵석(묵석=바닷물에 씻겨 곱게 윤기가 흐르는 검은 돌), 송정동 송정천 주변의 땅 속에서 파내는 토중석 등이 나고 특히 범서천에서도 멀지 않은 두동면 봉계리 활천리 일대는 검은 돌에 황색의 꽃무늬가 혹처럼 여럿 나있는 흑돌의 산지로 4∼5년 전부터 산수경석이 점점 구하기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수석인들의 취향이 구상에서 추상으로 바뀌면서 새롭게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다들 울산시에서 당일 코스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지요. 가볍고 허허로운 마음으로 이번 주말엔 범서천, 내주엔 봉계리하는 식으로 다니다보면 어느새 돌보는 눈이 생기고 집안엔 돌이 하나 둘 늘지요.』
울산시에만 26개의 수석인들 모임이 있고 전문 수석인만 줄잡아 5백∼6백명. 아마수준까지 합치면 5천 여명이나 될 정도로 수석인구가 많아진 것은 모두 입암리·미호리·봉계리 등 다양한 수석산지가 가까이에 밀집해 있는 덕이라고 김씨는 말한다.
『홍수가 한번 나면 물줄기가 채 잡히기도 건에 돌 찾는 사람들이 옵니다.
남들은 무너진 둑을 메운다, 물에 잠긴 논밭을 건진다 안달인데 엉뚱한 돌 찾는다고 물가를 뒤지고 다니는걸 보면 야속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돌 하나 건진다고 위험한 급류 속에도 뛰어드는걸 보면 그 정성은 하늘에까지라도 닿고 말 것 같아요.』
봉계리에서 고추방앗간을 차려놓고 있는 한영문씨(36)는 이제 돌을 찾는 사람들의「정성」과「경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단다.
『돌보는 눈은 한두번 탐석했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정심정시가 이루어 져야죠.』옛 사람들은 일생 일석을 추구하다가 일생 무석일 수도 있었고 불현듯 일생 무석에서 인생의 무상을 터득했다고 김씨는 말한다.
『돌은 돌이어야지요. 돈이 되면 곤란합니다. 그 많던 적옥석이 바닥이 났어요. 마을주민들이 가마니로 캐내고 골라잡으라는 식이니….』
김씨는 수석이 인간수업·자기수양을 떠나 자기현시의 도구가 되는 풍조가 큰일이라며 수석인의 책임은 올바른 애석의 길을 세우는 것이라고 힘준다. 【울주=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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