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덩이가 「아코디온」처럼…|경산 열차사고 상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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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경산=임시취재반】『쾅』-. 굉음과 함께 특급열차의 뒷부분과 달려오던 보통급행열차의 앞머리는 용틀임을 하듯 서로 꼬이며 10여m쯤 치솟았다. 무쇠덩이가 휴지처럼 찢겼다. 구겨진 사이에 형체없는 시체가 나뒹굴었다. 피범벅이 된 중상자들의 비명과 신음소리는 처절하게 경산들판을 덮었다. 승객들의 신발·옷가지·가방 등이 피에 얼룩져 흩어진 속에서 말없는 엄마의 손을 흔드는 젖먹이의 울음은 수습에 나선 사고현장 작업반원들의 가슴을 더욱 에게 했다. 열차끼리 단 한마디의 무전연락만 했더라도 막을 수 있었던 어처구니없는 대참사였다. 문명의 이기는 그것을 다루는 인간이 보다 조직적이지 못하거나 안전수칙을 무시했을 때 언제라도 흉기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또 한번 일깨워준 뼈저린 교훈이었다.

<사고경위>
제116 특급열차는 경산역을 하오3시45분 통과할 예정이었으나 삼낭진역에서 신호대기를 하느라 10분이 늦어져 경산역을 예정보다 8분 늦은 하오3시 53분에야 통과했다.
이 때문에 하오 3시55분 제시간에 경산역에 도착했던 제302 보통급행열차는 특급열차에 길을 비켜주느라 다른 선에 피해 있다가 특급이 통과한 뒤 2분밖에 지나지 않은 하오3시55분에 경산역을 떠났다.
특급열차 기관사 문창성씨(46)는 운행이 예정보다 늦어지자 시속1백km의 속도로 달리던중 사고건널목에서 30여m 떨어진 우산모퉁이 커브길을 도는 순간 철길 위에 내버려진 오토바이를 발견,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열차는 오토바이를 친 뒤 4백여m나 그대로 미끄러져 나갔다.
버려진 오토바이는 이날관내 출장에서 돌아오던 고산면산업계장 구토웅씨(38)와 산업계 차석 김기주씨(40)가 타고 있던 것. 구씨와 김씨는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언덕진 건널목을 건너던 중 기차소리가 다가오는데 오토바이 앞바퀴가 철로에 끼여 잘 나가지 않자 오토바이를 끌어내려다 실패하고 철길위에 버려둔 채 달아났었다.
한편 기관사 문씨는 열차가 멈춘 뒤 부기관사 이재문씨(47)와 의논,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다치지 않았는지를 확인키 위해 열차를 2백여m쯤 후진시키기 시작했다. 여객전무 김암우씨(34)는 열차꽁무니9 호차 승강구에서 후진청색신호를 했다.
바로 이때 특급을 뒤따라 달리던 보통급행열차 (기관사 박이종·43)가 우산모퉁이를 도는 순간 특급을 발견, 급브레이크를 밟았으나 그대로 밀리면서 특급의 맨 뒤 객차인 9호객차부터 들이받았다.
이 충격으로 8, 9호 객차는 열차에서 떨어져 퉁겨나가면서 철길옆 5m아래 진흙바닥으로 나뒹굴었으며 보통급행열차는 계속 밀고 나가 기관차부분이 7호 객차를 아코디온처럼 찌그러뜨리며 중간부분까지 파고 들어가 간신히 멈췄다.
이 때문에 특급열차7, 8, 9호 객차에 타고있던 승객들의 피해가 가장 컸다.

<사고현장>
사고지점에서 특급열차가 급정거했을 때만해도 승객들은 웬일인가하고 의아해 했을 뿐 잠시 후 엄청난 참사가 일어날 줄은 짐작치 못했다.
특급열차가 삼낭진 못미쳐에서도 신호를 대기하느라 정거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고순간 철로변 밭에서 김을 매던 목격자 이종룡씨(35)는 갑자기『쾅』하는 굉음과 함께 섬광이 번쩍였으며 동시에 특급열차의 8, 9호 객차는 민속차전놀이 때처럼 하늘로 솟았다고 했다.
5m 아래 진흙구덩이로 곤두박질한 8호객차는 가로누웠고 9호객차는 완전히 거꾸로 처박혀 바퀴를 하늘로 향한 채 드러누웠다.
7호객차 21호석 승객 원미옥씨 (30·여·서울중곡2동150의377) 는 『열차가 멈춘후 여객전무가 9호객차쪽으로 뛰어가는 것을 보고「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쾅」하는 소리와 함께 충격이 있어 순간 아들승왕군 (1)을 끌어안고 의자 밑으로 구부리다 정신을 잃었다』고 악몽같은 순간을 되새겼다.
7호객차는 아코디온처럼 찌부러졌고 그사이로 남자의 구두신은 발이 나와있었다.
7호 객차승객들도 뒷부분에 탔던 승객들은 치밀고 들어간 보통급행 기관차에 짓눌려 대부분 숨졌다. 7∼8명은 충격으로 객차 밖으로 퉁겨나갔다.
7, 8, 9호 객차사이에 끼인 강창규씨(32)등 6명의 시체는 15일새벽 용접기로 분해작업을 한후 꺼내 병원에 안치했다.

<구조작업>
사고가 나자 고산면시지동등 현장부근 주민20여명이 맨 먼저 도착, 아비규환속에서 열차안에 있던 부상자들을 밖으로 끌어냈다.
승객 중 몸이 성한 사람들이 부상자들을 철길 밖 보리밭으로 운반하기도 했다.
사고후 30분쯤지나 전투경찰 2백명, 경찰1백명, 예비군 1백명 등으로 구성된 긴급구조대가 도착해 전복된 8, 9호 객차와 7호객차에서 사상자들을 끌어내 부근 밭에 임시 안치했다.
부상자들도 군 헬기와 뒤늦게 달려간 앰불런스에 실려 경북대의대부속병원 등 대구시내 13개 병원에 긴급후송 됐으나 앰불런스가 모자라 피를 흘리며 밭에 누워 기다리면서 아우성쳤고 후송에만 1시간이 걸렸다.
사고현장에는 김성배 경북지사와 관계기관장들이 나와 사고수습을 지휘했으며 하오8시30분쯤 윤자중 교통부장관이 속대구역에 설치된 사고대책본부와 병원 등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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