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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밑도 '정기 신체검사' 필요 … 위성으로 싱크홀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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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012년 지질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S업체는 서울 강남대로 양재역 6번 출구 앞 도로를 지표면 투과 레이더(GPR·Ground Penetrating Radar)로 촬영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강남역 방향 7차로 지하 1m 지점에서 동공(洞空·텅 비어 있는 굴)이나 지반 침하로 추정되는 곳이 발견됐다. 서대문역 사거리 신한은행 앞 도로 지하 1.5m 지점에서도 동공으로 추정되는 반사신호가 탐지됐다. 서울시 전역에서 28곳을 조사한 결과 14곳에서 동공, 지반 침하 등 지하공간 이상징후가 확인됐다.

 시는 지난해 초 GPR 한 대를 도입하면서 도로 정비계획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지난 5일 송파구 석촌지하차도에서 싱크홀과 동공 6개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체면을 구기게 됐다. “1년에 한 차례 정기 신체검사를 받는 것처럼 지하공간에 대한 정기검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이유다. 관동대 박창근(토목학과) 교수는 “싱크홀이나 동공으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 최소화를 위해선 지반 침하 여부를 확인하는 기술 개발에 주력할 때”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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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크홀이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2000년 이후 지하공간 점검기술을 놓고 국가 간에 치열한 개발경쟁이 전개되고 있다. 한국도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지난해 연말 ‘위성레이더 영상을 활용한 지반 침하 관측기술’이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간단히 정리하면 위성에서 촬영한 영상을 분석해 지반 침하지역을 확인하는 기술이다. 연구 책임을 맡은 서울시립대 정형섭(공간정보공학) 교수는 “지표면이 갑자기 꺼지는 싱크홀이 발생하기 전에는 주변이 침하하는 전조가 나타난다”며 “수십㎞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위성 영상을 통해 수 년에 걸쳐 조금씩 진행되는 지반 침하지역을 추적·관찰하면 싱크홀이 발생하기 쉬운 곳을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성을 통한 싱크홀 예측에는 지난해 8월 발사한 아리랑 5호가 사용된다. 위성에 장착된 기상위성 레이더를 활용하는 것이다. 기상위성 레이더는 X밴드 주파수(파장 2.5㎝)를 지상으로 쏘는데 이 전파는 지표면에 닿으면 반사되는 특징이 있다. 수 년간 쌓인 영상을 분석하면 지표면이 가라앉고 있는지 혹은 솟구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신체검사에 비유하자면 넓은 부위를 확인하는 X선 검사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지표면의 반사파를 활용하기 때문에 날씨의 영향도 받지 않고, 밤에도 고해상도의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위성을 통한 싱크홀 예측은 막 닻을 올리는 단계다. 정 교수는 “아리랑 5호가 궤도에 오른 게 지난해라 축적된 영상자료가 아직까진 빈약하다”며 “현재는 독일 등에서 구입한 위성 영상을 기초로 지반 침하지역을 분석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위성을 통한 싱크홀 예측법은 장점이 많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하는 현 침하 측정법은 정밀도는 높지만 넓은 지역을 장기간 측정할 경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 수십 년에 걸쳐 천천히 침하되는 경우 관측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었다.

 GPR은 컴퓨터단층촬영(CT)과 유사하다. 소규모 지역의 지하공간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서다. GPR은 전자파를 지표면에 쏜 다음 수신한 반사파를 분석해 지하 균열이나 동공을 확인한다. 전자파는 성분이 서로 다른 모래·흙 등의 경계면에서 반사되는데 이를 지하공간 점검에 응용한 것이다. 최대 탐지 깊이가 수십m에 이르는 장비도 있다. 아스팔트를 투과할 수 있어 교량 등 다양한 곳에 적용이 가능한 비파괴검사법이다. 서울시는 석촌지하차도 동공에 대한 후속 대책으로 GPR 2대를 추가 도입하는 방안을 28일 발표했다. 위성을 통해 지반 침하 확인이 불가능한 지하차도 등에서도 활용할 수 있어서다. 최연우 서울시 도로포장관리팀장은 “지진이 잦은 일본에선 시속 20㎞로 한 개 차로를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상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하 속에 감춰진 싱크홀이나 동공을 최종 확인하는 수단은 굴착이다. 땅을 파내 동공을 확인하는 작업은 조직검사에 견줄 수 있다. 하지만 GPR과 비교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하지만 도로포장을 걷어내야 해서 교통정체가 발생할 수 있다. 현재 석촌지하차도에선 추가 동공 확인을 위해 26곳을 시추했고 한 달 가까이 지하차도 통행이 제한되고 있다.

강기헌·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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