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쑥구렁, 가시 덤불
핍박받은 이조의 땅
살도 뼈도 썩어내린
주검의 뿌리에서
용하다
붉은 피톨의
꽃대궁을 내밀고.
대둔산 깊은 골짝,
비바람 할퀸 자리
돈도 빽도 바이 없는
더벅머리 상사화야.
그 누가 저지른 죄를
너를 빌어 참수하는….

<노트>
내 고향 해남의 대둔산(대흥사)은 상사화의 자생지다.
꽃이 필 무렵엔 이미 잎이 다 시들어버리는 상사화. 그러므로 꽃과 잎이 단 한번도 서로 만나보지 못하는 묘한 생리를 지닌 그 꽃이, 지난 밤 꿈속에 나타났다. 의인화된 상사화의 피투성이 모습에 가위눌린 나는 식은 땀을 뻘뻘 흘렸다.

<약력>
▲전남 해남 화산 출생 ▲서라벌예대 졸 ▲공보부 신인 예술상·「시조문학」추천 및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어초문답』. 에세이집 『갈봄 여름 없이』등.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