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화적 상업성 벗어날 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출판이 수와 양에 있어서 어느 정도 발전해있느냐는 한 사회의 문화적 척도다.
또 출판은 정치·경제·사회·문화·과학 등 모든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근대화률 지향하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 출판은 이러한 중요한 역할이 강조되고 있으나 ▲제작과 보급증진을 위한 정치· 사회적 뒷받침의 부족 ▲도서관의 취약 ▲다원화에 대한 제약 ▲양적 증대를 따르지 못하는 질 등으로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크리스천·아카데미」는 이러한 출판의 당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한국출판문화의 현황과 육성대책』을 주체로 한 세미나를 8, 9양일간 서울 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고 있다. 이 세미나의 발제 강연에서 김언호씨(출판사 한길사대표)는 문공·상공·문교· 재무부 등과 도서관 협회·출판협회 등의 관계자들로 「출판산업현대화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책의 제작을 위한 포괄적 연구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책이 기획뿐만 아니라 종이·인쇄·제본의 전과정과 연관되어 있고 경영·세제적 측면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포괄적으로 다루어지지 않고서는 출판계가 영세성을 면치 못해 도약은 물론이고 만성적 불황도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김씨는 또 「독서운동 추진협의회」같은 것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독서를 생활의 필수 불가결한 부분으로 체질화시키는 방안 내지 전략을 범사회적으로 강구하도록 하자고 제의했다.
종업원3백 명 이상 기업체에 도서관 설치를 권장하는 것 등이 실천방안이어 될 수 있다고 말한 김씨는 또 학교교육에 있어서 암기위주의 수험교육을 벗어나 독서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도 이 협의회가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책의 상당부분이 도서관을 통해 읽혀지고 그만큼 구입량이 많다면 도서관의 취약은 출판을 제약하는 요인이 된다.
이중환씨(출판평론가)에 따르면 우리 나라의 도서관은 인구29만4천명 당 1개관으로 미국의 2만5천명 당 1개관에 비하면 10분의1도 되지 않고 「멕시코」의 6만 명당 1개관보다도 훨씬 적다. 장서 수는 더욱 빈약하여 「덴마크」의 1인당 3·2책과는 비교도 되지 않고 세계에서 가장 적은 장서량을 가졌다는 「버마」 「시리아」의 0·04책보다 적은 0·02책으로 개선 전망도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전국 1백10개 공공도서관 중 자료구입비가 전혀 없는 곳이 27개관, 10만원 미만인 곳이 16개관이라고 밝힌 이씨는 도서관의 내실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고급 문화를 담는 책의 출판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우울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김언호씨는 사회병리현상이 있다면 이를 과감하게 공개하여 그 치유책을 마련해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현실에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책이 있어도 그것을 허용함으로써 우리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해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정부가 문화정책의 기조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밀어주는」방향에서 추구해줄 것을 기대했다.
우리출판계는 70년대에 들어와 양적으로 증대된 것으로 나타나있다. 신간 발행 총수는 69년 2천5백 종에서 79년 1만5천 종으로 6·5배 신장했고 발행 부수는 4백만 부에서 6천만 부로 13·9배 늘어났다. 그러나 이 같은 증가의 대부분은 참고서류에 의한 것이다. 69년 총 발행 부수 4백만 부일 때 참고서류가 25만 부로 구성비 0·6%이던 것이 79년에는 3천7백만 부로 총6천만 부의 51%가 되었다.
이에 비해 문학부문은 69년 구성비 25%가 69년에는 3·3%로, 철학부문은 3·7%에서 0·9%, 종교부문은 8·7%에서 3·2%, 사회과학부문은 14·7%에서 3·9%로 축소됐다.
이것은 양적 증대의 한 허상이라는 이중환씨의 지적이다.
출판인의 자세에 대하여 김씨는 격변을 거듭하는 사회현상을 통찰하고 이에 대응하는 기획을 펴낼 수 있는 자질의 향상이 있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아마추어적인 자세로 출판에 종사하는 출판인이 있지 않은가 자문했다. 또 수요창출을 위한 노력과 출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제고가 뒤따라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씨도 이와 관련, 출판의 몰문화적 상업성을 지적하면서 해외 소설류의 중복간행·무단복제·날림번역도서가 출판인의 인상을 스스로 망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 세미나 참석자들은 이 같은 어려운 여건과 현실에도 불구하고 한글세대가 자라남에 따라 독자층이 광범위해지고 있으며 단행본 출판이 크게 늘어났고 젊은이들의 출판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등 고무적인 현상이 발견되고 있어 앞으로 출판계가 이러한 변화를 수용할 경우 지금까지의 타 분야에 비한 상대적 퇴보를 극복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