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사한 「보비·샌즈」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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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8세의 나이에 IRA 게릴라가되어 생애의 약 3분의1을 옥중에서 보내다 죽음의길을 택한「샌즈」는 1954년 3월9일「벨파스트」교외 신교 거주지역「라드쿨」에서 4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만해도 신·구교도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되지않았기때문에 신교계 육상클럽이 주최한 경기에서 메달을 획득, 주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샌즈」는『피의 일요일』로 유명한 72년1월30일 13명의 가톨릭민권운동가들이 「런던데리」에서 영국정부군에 의해 살해되는 참상을 목격하고는 IRA에 가입했다.
73년 두차례의 권총강도및 무기소지등의 혐의로 5년징역형을 선고받았던「샌즈」는 당시 신·구교분쟁에 관련된 수감자들이 받던『특별대우』를 받다가 76년4월 출감했다.
그후 IRA「뵌브루크」사령관으로 지명된「샌즈」는 「제럴딘」양과 결혼한지 얼마 지나지않아 한 가구점폭파사건과 관련해 그의 집을 급습한 군인들에 의해 77년 출감6개월만에 또 다시 무기소지혐의로 체포돼 14년 징역형을 선고받고「메이즈」형무소에 수감됐다.
그는 수감직후 이미 폐지된 정치범특별대우를 요구하며 형무소내 IRA수감자들과 죄수복거부운동을 전개함과 동시에 『오물투쟁』을벌여 위생시설사용을 거부하고 감방벽등을 온통 오물로 더렵혔다.
화장지에 시와 노래등을 적어 밖으로 내보내던「샌즈」는 80년12월「메이즈」형무소수감자 7명의 정치범대우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전개할즈음 형무소내 IRA 사령관으로 지명돼 파업을 종식시키기 위한 형무소 당국과의 협상을 시도 했으나 영국측 협상 담당자는 이를 거부했다.
그는 확고한 영국정부의 공약을 요구하며 올해 3월1일 스스로 단식투쟁을 개시, 4월9일에는 「퍼매너」와 「사우드티론」지구보궐선거에 옥중출마하여 영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그가 옥중에서 단식투쟁을 계속하는동안 『「보비·샌즈」의 수기』라는 책자가 나와「벨파스트」의 가톨릭구역에서 날개돋친듯 팔렸는데「샌즈」자신은 이를 아마도 자신의 자서전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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