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걸며 방한을 약속-내가 안나본 「테레사」수녀- 김수환 추기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천사로 알려진 「테레사」수녀의 한국방문(4일)을 우선 온 국민과 함께 진심으로 환영하고 싶다.
내가 만나본 「테레사」 수녀는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빠짐없이 실천에 옮기는 「살아있는 성녀」였다. 그녀는 온몸이 진무른 나환자들을 즐거이 씻어주고 거리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을 모아다가 어머니처럼 돌보며 하나님의 세계로 인도하는 「불우한 인류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79년 「노벨」평화상을 받음으로써 더욱 유명해진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69년초 「로마」교황청 일반 알견에서였다.
「유고슬라비아」태생의 백인이면서도 백인답지 않게 검게 탄 그녀의 얼굴빛과 깊게 팬 주름살에서 성녀의 고된 역정을 실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체구는 1m50㎝정도의 단구였지만 눈빛으로부터 비쳐오는 그녀의 사람의 의지는 겸허했고 따사로움을 느끼게 했다.
그녀는 스스로 먼저 나에게 한국을 방문하고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나는 한국수녀들에게 현대판 성녀인 「테레사」수녀를 만나게 해주고싶은 마음에서 스스럼없이 한국을 한번 방문해달라고 초청했다.
그래서 73년5월25일로 방한일정을 잡고 확약까지 했으나 실현을 보지 못했다. 그해 가을 호주 「멜번」성체대회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자신의 갑작스런 바쁜 일정 때문에 방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것을 깊이 사과했다.
그후 76년 미국 「필라델피아」성체대회에서도 만나 방한을 약속했었으나 실현이 안 됐다. 지난해 10월 가정문제를 다룬 「로마」시노드(주교회의)에서 만났을 때는 81년2월 「필리핀」방문 길에 꼭 한국을 들르겠다고, 나와 새끼손가락을 걸면서 약속했다. 「테레사」수녀는 나한테 이같이 철석같은 약속을 하면서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 나는 심신의 가난과 헐벗음에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적잖이 있다고 했다. 빈민의 구원에 온 정열을 바쳐온 그녀는 나의 대답을 듣고 더욱 방한 약속을 마음속에 되새기는 듯 했다.
1901년 8월 「유고」의 「스코프」에서 출생한 그녀의 본명은 「아그네스·근히야·보약스히야」-. 12세 때 수녀가 될 것을 결심한 「테레사」는 18세때 「에이레」로 건너가 수녀원에 입문했고 1928년 수녀가 돼 인도 「캘커타」의 성「아그네스」 고교 지리교사로 파송 됐다.
이 학교에서 20년간 봉직, 교장까지 된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가난한 사람과 외롭게 죽어 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게 보다 값진 나의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퇴임사를 남기고 학교를 떠났다. 이때부터 「테레사」는 자선선교 수녀단(일명 사랑의 선교회)을 조직, 세계제일의 빈민도시로 알려진 「캘커타」에서 35년 동안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돌봐오고 있다.
사랑의 선교회는 현재 70개국에 지부를 두고있으며 소속 수녀가 1천6백여명, 수사가 1백80여명이다. 「테레사」수녀 단은 70개의 빈민학교와 2백60개의 병원· 진료소, 58개의 나환자 수용소, 32개의 「임종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는 77년 사람의 선교회지부(서울 성북구 삼선동· 원장「페더·물모」·인도인)가 들어왔고 부산에 분원이 있다.
무한한 사람의 힘을 가진 「테레사」수녀는 단 두벌의 무명 수녀 복과 십자가·안경· 물통· 시계·구두 한 켤레가 그녀의 전 재산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테레사」수녀의 방한이 많은 사랑의 결실을 남겨 주길 기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