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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의 옷차림이 한자리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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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한 여류복식연구가의 집념의 소산인 석주선 기념 민속박물관이 5월2일 드디어 그 모습을 일반에게 보여준다.
76년 석주선 박사의 개인 소장품 3천3백65점을 기증 받은 단국대가 총 공사비 6억 원을 들여 민속박물관을 건립, 개관하게 된 것이다.
이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의 연건평 7백49평 규모로 4개의 전시실과 세미나실·유품 정리실·사무실 등을 갖추고 있다.
민속박물관으로는 국립민속박물관·온양민속박물관에 이은 세 번째지만, 조선조시대 의습 일체에 중점을 두고 있어 국내 유일한 복식박물관으로 평가된다.
관·갓·모류 5백16점, 머리 장식품 5백18점, 대류 2백48점, 흉배 72점, 장신구 2백78점, 신발류 99점, 의복 7백10점, 기타 8백24점이 소장돼 있는데 이중에는 중요 민속문화재 1호로 지정된 덕온공주의 당의와 심동거의 금관조복(중요 민속문화재 2호)를 비롯, 전모 등 진귀한 물품이 수두룩하다.
한번에 전시가 가능한 양은 l천점 정도. 현재 1층은 평민의 의생활 모습으로, 2층은 계급 의식 속의 의생활로 구분해 꾸며져 있다.
석주선 박사가 의습 일체에 대해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 때는 l947년부터 동경의 일본 고등양재학원을 졸업한 그는 원래 서양의상을 공부했으나, 해방과 함께 한국복식으로 전환했다.
실물을 보지 못한 채 문헌으로만 공부하는데서 늘 안타까움을 느껴 오다 가까운 친지들의 도움으로 선인의 의복을 접할 기회가 생겨 크게 만족한 그는 그때부터 실물에 의한 지식습득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수집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도가 헐어 빠지도록 전국 방방곳곳을 헤매며 겪었던 고생, 눈앞에 물품을 두고서도 돈이 없어 돌아서야 했던 쓰라림보다도 가장 어려왔던 일은 수집품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 섬유 최대의 적인 습기로부터의 보호는 가장 심각한 문제중의 하나였다.
『조상님네들께 안심하고 쉴 집을 마련해드려 이젠 마음이 놓입니다. 하지만, 섬유의 한계는 어쩔 수 없으므로 이제 원형을 기초로 복원하는 작업을 서둘러야겠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후학들이 책과 실물을 견주어 공부할 수 있게끔 해두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박물관 건립과 함께 3천여 권의 장서도 기증한 우 박사는 앞으로 세미나실을 활발히 이용하여 열심히 「움직이는 박물관」으로 학문의 장이 되도록 할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제 수집한 결과를 놓고 보니 상류층에 비해 서민층의 것이 부족했다는 것을 느껴요. 후학 중의 누군가가 서민 의습에 관한 수집을 보완해 주길 기대합니다.』 고희를 넘긴 노학자와 한 줄기 바람이다. 글 홍은희 기자 사진 최재영 기자

<석주선씨>
▲1911년 생
▲1940년 동경 일본 고등양재학원 졸업
▲1974년 영남대 명예 이학박사
▲국립과학 박물관 공예 연구실장, 수도여사대·동덕여대 교수 역임
▲현 단국대 민속학 연구소장 겸 동대 학원 교수
▲저서로 『우리나라 옷』 『한국 복식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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