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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구조개혁 '脫線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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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공공부문에 대해선 개혁 원칙을 지키겠다던 정부가 20일 철도 노사 협상에선 크게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영화 철폐, 가압류 해제 등 노조 측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지난 주말 "민영화 반대 주장은 파업 명분이 될 수 없다"며 강경입장을 밝혔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두산중공업 사태 때 노조 편을 들어 줬던 정부가 계속 '친노동'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은 그래서 나온다.

물론 이번 협상의 성과도 있었다. 파업시 여객 수송은 물론 화물 운송 등 물류에도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던 상황에서 노사가 합의를 통해 문제를 풀었다는 점은 향후 다른 노사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두산 사태에 이어 이번 철도 노사 분규까지 무리 없이 해결됨으로써 '대화와 타협'을 바탕으로 한 참여 정부의 노사 정책이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철도 구조개혁 어떻게 되나=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철도 민영화 방침'을 철회하는 대신 그동안 노조 측이 반대해온 '시설과 운영의 분리'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냈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이미 대통령직인수위 때부터 민영화 논의는 물 건너간 것"이라며 "시설과 운영 분리안을 노조가 받아들인 것이 큰 수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까지 철도 민영화 철회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노조가 민영화를 반대하자 운영부문을 떼어내 공사화한 다음 추후에 민영화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공사화와 관련해서도 이번 합의문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못해 철도 구조개혁 추진과정에서 논란과 갈등의 여지를 남겨 놓았다.

전 정부에서 추진하던 '철도 운영 부문 민영화'가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운영 부문 공사화'로 바뀐 데 이어 이번에는 아예 '민영화 포기'선언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철도구조개혁 관계자는 "이렇게 자꾸 후퇴하고 양보만 하면 정작 제대로 된 구조개혁이 가능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양측은 또 시설과 운영 분리안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열차 안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지 보수 기능은 운영 부문과 통합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키로 합의했다. 현재 정부안은 유지 보수 기능을 시설공단에서 맡는 것으로 돼 있다.

게다가 노조 측과 일부 철도청 관계자들은 유지 보수 기능에 기존선 전철화와 복선화 등 '기존선 개량사업'도 포함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선 개량사업은 한해 예산이 2조가 넘는 굵직한 사업이다.

그러나 건교부 측은 "선로 이상 유무 등을 점검하고 고치는 단순한 유지보수 기능만 얘기하는 것이지 기존선 개량사업은 절대 아니다"라며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고속철도 공단 측도 "기존선 개량사업을 운영이 가져갈 경우 시설공단은 신선 건설만으로는 일거리가 적어 존립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구조개혁 왜 필요한가=지금의 국가운영 체제로는 적자투성이의 철도경영을 개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도 매년 6천억~7천억원에 달하는 영업적자는 국민세금으로 메우고 있다.

또 구조개혁을 하지 않을 경우 국민부담액은 2020년까지 약 50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1980년대 이후 철도는 세계 각국에서 민영화되거나 공기업 체제로 전환되는 추세다. 국가가 철도를 직접 운영하는 곳은 한국을 비롯해 5개국뿐이다. 우리도 80년대부터 꾸준히 논의해 왔으나 이해관계가 얽혀 아직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공기업 개혁에 나쁜 선례=파업을 무기로 '민영화 철회'를 요구한 철도 노조 측의 주장이 수용됨에 따라 향후 배전.발전.가스 등 민영화 논란을 겪고 있는 다른 공공 사업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정부 고위 관계자는 "대부분의 민영화 방침은 전 정부에서 세워진 것으로 현 정부 방침과는 다르다"며 큰 변화를 예상하기도 했다.

조준모 숭실대 교수는 "공기업 문제에 대한 정부의 보다 일관되고 명확한 입장이 필요하다"며 "민영화 문제도 정치적 타협이 아닌 시장 경제 논리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갑생 기자

*** 철도 노사협상 일지

▶1999년 5월=정부, 철도구조개혁 결정(시설 공단화, 운영 민영화)

▶2001년 12월=철도산업발전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 한국철도시설공단법안 국회 제출

▶2002년 10월=한국철도주식회사법안 제출

▶12월 16일=노사 단체교섭 진행

▶2003년 2월 19일=노조, 쟁의행위 찬반투표

▶3월 1일=인수위, 구조개혁 조정안 발표(운영 공사화)

▶4월 2일=노조, 4월 20일 파업 선언

▶4월 14일=정부, 불법파업 규정해 강경 대응키로

▶4월 18일=노동관계장관 회의

▶4월 20일=노사 합의, 파업 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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