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월호 해법, 여권·유가족의 신뢰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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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들이 국회의원의 존재이유인 입법권을 포기하고 광화문으로, 청와대로 몰려다니고 있다. 국민을 위해 투쟁한다는 야당의 입법 거부 때문에 ‘송파 세 모녀 자살’ 같은 참극을 예방하기 위해 2300억원의 지원 예산이 마련돼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안마저 발이 묶여 있다.

 선명 투쟁이란 진부한 명분에 끌려 다니는 새정치연합 의원들 가운데 15명만은 입법권을 지켜야 한다는 존재선언을 했다. 김영환·변재일·유성엽·장병완·조경태 의원 등은 ‘국회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라는 연명의 성명서에서 “작년 여름, 당내 강경여론의 압력을 못 견디고 서울시청 앞에 천막당사를 치고 석 달 열흘간 철야 노숙해서 얻은 게 무엇인가. 오늘의 이 장외투쟁도 노숙투쟁과 다름없이 의회 민주주의의 포기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와 국민 사이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이 성명서에 동참한 황주홍 의원은 ‘영국을 바꾸는 것보다 노동당을 바꾸는 것이 더 어려웠다’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말을 인용하면서 “(장외투쟁은)박영선의 한계가 아니다. 우리 당의 구조적 한계다. 우리나라를 개조하는 것과 우리 당을 개조하는 것, 어느 일이 더 실현 불가능할까”라고 한탄했다. 방향을 상실한 제1야당을 구조하는 데 장외투쟁을 거부한 15명 의원이 앞장서길 기대한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김병권 가족대책위 대표가 어제 두 번 째 만남을 이어간 것은 또 다른 희망과 기대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유족들이 이완구-박영선 합의안을 깬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여당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새누리당이 법적으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2명의 특별검사 추천위원 선정 때 야당과 유족의 사전 동의를 받겠다는 파격적인 양보안을 유족들은 거부했다.

 유족은 새누리당의 선의를 믿지 못하겠으니 여당 몫의 특검 추천위 선정권을 자신들이 갖고 여당은 사전 동의권만 행사하라고 주장했다. 언뜻 보면 내용상 비슷한 얘기다. 결국 상대방의 선의 확인과 신뢰 쌓기, 오해의 해소가 관건이다. 두 차례 만남은 양 극단에 위치했던 두 세력이 한자리에서 눈을 맞추고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상대방이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의미 있는 계기였다.

 세월호의 분노를 다스리고 민생과 경제살리기로 넘어가려면 박근혜 대통령의 결심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어머니의 심정으로 딸을 잃고 46일째 단식 중인 유민이 아빠의 손을 잡고 위로하면 유족들의 불신을 해소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극단적인 비극을 겪고 상심한 사람들을 껴안는 것이야말로 국정 최고 책임자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마음이 통하고 신뢰가 쌓이면 법과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합의를 이루는 게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국정 운영의 무한 책임을 진 대통령이 세련된 정치력을 발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