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오늘 받아쓰기 백 점 받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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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주금숙씨<청각장애자 어머니>
『이 아이는 청신경이 마비되었습니다. 듣지도 못 할뿐 아니라 말도 할 수 없지요.』
이 절망적인 선고를 받은 것은 윤조가 만3년8개월 때의 일입니다. 과연 내가 다시 그 푸르고 맑은 하늘을 보고 살수 있을까?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편리한 기관중의 하나인 저 입에서 어쩌면 저렇게도 무서운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절망이라는 단어가 가장 실감 있게 나에게로 다가온 것입니다.
윤조가 만2년6개월 때었습니다. 독감후유증으로 후두염을 앓았습니다. 2, 3일 동안 40도의 고열은 병원응급 조처에도 아랑곳없이 계속되었습니다. 아이가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저는 순간적으로 스쳐 가는 소스라질 생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 병신이 되더라도 살기만 했으면 하고요.
어느 엄마나 다 비슷한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이로부터 차츰차츰 청력을 잃어간 것 같습니다. 병원에선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하고, 특수학교에 가보았지만 일반 국민학교의 떠들썩함에 비해 너무나도 조용한 분위기에 사막함 조차 느끼게 되어 몇 번이나 되돌아섰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갈팡질팡하고 있을 즈음 전부터 갈 알고있던 교수님으로부터 저와 꼭 같은 경우의 어머님 한 분을 소개받았습니다. 그분은 혼자의 힘으로 거의 정상아에 가깝도록 성공시킨 분이십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분입니다. 저는 그분에게서 힘을 얻었습니다.
불가능이란 없다. 돌고래나 구관조도 가르치면 말을 하는데 하물며 사람인데 못하겠나. 그러니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시설이 좋은 특수학교를 하나 택했습니다. 만4살 때 유치부에 입학시켰습니다. 아이가 배운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제가 방향을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한편 집에서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온통 가구며 문이며 할 것 없이 이름을 씨서 붙였습니다. 그리고 가족 모두와 입이 있으면 강아지도 앵무새도 병아리도 모두 아이의 선생님이 된 셈이죠.
심지어 세탁기도 수돗물도 (소리가 나니까요) 그리고 친척들도 몇 마디의 말을 아이와 주고받는 것을 어떤 선물보다 반긴다는 것을 알게되어 방문시에는 항상 사전에 저와 전화연락을 합니다.
애를 들어서 오늘 『기어간다』라는 동사를 가르칠 예정이었으면 기어다니는 인형을 부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다보면 너무 접촉하는 사람의 한계가 생기기 때문에 일반유치원에도 보냈습니다. 가급적이면 그 또래의 정상아이들과 접촉을 하게 하기 위함이고 또 중요한 점은 사회성과 정서안정을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는 정확한 발음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대화이므로 가정에서의 보다 큰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쨌든 저의 아이는 금년에 일곱 살이 되어 일반 국민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대로 상위 급에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엄마, 나 받아쓰기에서 백 점 맞았는데 뭐 사줄 거야』하고 헐레벌떡 뛰어서 들어옵니다. 이젠 아이들이 벙어리라고 놀리는 일도 없습니다.
간혹 있더라도 스스로 훌륭히 해명합니다. 『나는 귀가 아파서 그래. 이것 봐, 말하지 않아』하고요. 저는 평소에 벙어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에 대비해서 벙어리라는 소리를 가끔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너 말을 똑똑하게 못하면 벙어리가 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벙어리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별로 저항을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발음은 정확치 않으나 앞으로 끊임없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언젠가는 두고 떠나야할 신의 섭리이니까요. 나의 생명이 끝나는 날까지 모든 시간과 힘과 사랑을 나의 아이에게 바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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