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4)|제73화 증권시장<제자=필자>(12)-증권회사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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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국채매매가 점차 증가되면서 증권회사 수도 대폭 늘어갔다.
5개였던 것이 54년에 들어와 l2개 증권회사가 신규면허를 얻었다.
동화·동일·태평·범양·서울·대동·내외·한국·부국·대도·한일·대유증권 등-.
이를 계기로 그 동안 증권토박이가 아니었던 유력인사나 대기업들이 새로이 증권업계에 진출하게 되었다.
예컨대 경성방적이 대꾸증권을 차렸고 대림산업이 서울증권을, 대한산업이 대동증권을 창업했으며 재계인물로서는 임문환·설경동·오계선·지덕영·이강호·박성일·심종석씨 등이 새롭게 얼굴을 내밀었다.
이처럼 증권협의회의 회원사가 5개에서 17개로 늘어나고 재계의 실력자들까지 가세하자 증권업계로서는 용기 백 배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증권거래소 건물을 힘겹게라도 다시 찾을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이 증권업계의 힘이 한참 뻗어났던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각 회사의 대표들은 매일같이 출근과 동시에 비좁은 증권협회사무실에 모여 앉았다.
무슨 수를 써야 하루빨리 시장을 열 수 있을까로 머리를 맞대었다.
첫번째로 나온 이사회결의안은 회원집회라는 것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정식 시장은 아니더라도 매일 오전 9시30분에 한자리에 모여 그날의 거래시세를 의논껏 정하고 그 시세를 기준으로 삼아 점두거래를 계속해 나가자는 내용이었다. 회사마다 뿔뿔이 흩어져 무질서하게 점두거래를 해온 것에 비하면 진일보한 셈이었다.
매매량이 증가함에 따라 간혹 위약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으나 협회 측에서는 각 증권회사들의 책임한계를 명백히 하기 위해 위임장제도와 손해배상제도를 만들어 실시했다.
55년 들어 다시 16개의 증권회사가 새로 생겨 모두 33개 회사로 불어났다.
신한·평화·중앙·한흥·성우·삼일·신흥·성남·삼화·한성·풍국·익흥·신우·합동·수도·흥산 등의 16개 사-.
이즈음에 새로이 증권시장에 발을 디딘 인물들로는 동아건설회장 최준문씨, 대구상공회의소회장 여상원씨, 한성실업사장 김용순씨, 일신산업사장 최이혁씨, 경희대학재단의 유연진씨 등이었고 그밖에도 홍익표·서재식·홍순봉·원달호·김규면·진영득씨 등의 쟁쟁한 「멤버」들도 포함되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신용이란 사람 따라 가는 것이다. 증권계 토박이들이 아무리 증권이 좋은 것이라고 떠들어본들 떨어진 공신력이 올라갈리 만무하다.
그 반대로 평소 믿을만한 사람이 주식을 산다면 그 주식까지도 무턱대고 믿게되는 것이 일상심리다.
어쨌든 이를 계기로 증시가 그네들만의 것이라는 오랜 선입견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점차 일반에게 파고들 수 있었다.
이리하여 각 증권회사 대표들은 매일 아침 증권협회 전무실에 임시로 마련된 입회장에서 시세결정과 대부분의 거래를 행했다.
국채거래량이 늘어나면서 55년 말쯤부터는 오전·오후로 나누어 하루 2회씩 장을 열어야했다.
장차 개설될 증권거래소에 대비해 「딱딱이 치는 법」강습회를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시장대리인을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과거 조선증권취인소에 근무한 경력이 있던 최응환씨와 지상훈씨 등이 당시의 강습을 도맡았었다.
그런데 곤란한 문제는 일본말 일색으로 되어있는 증권관계 용어를 여하히 우리말로 옮기느냐는 것이었다.
예컨대 매매되는 주식을 일컬어 「메이가라」(명병)라고 했는데 이를 그대로 「명병」이라고 부르자는 의견과 왜 색이 농후하니 단어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었다.
종목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내기까지는 지금은 짐작도 안갈 이 만큼 심각한 논쟁이 있었다.
여기에 얽힌 에피소드 한 토막-증권거래소 설립 후 소위 1·16국채파동이 일어났을 때다. 각 신문은 이 사건이 정치성이 개재되었다고 해서 큰 기사로 판단했지만 파동의 핵심인 『청산거래에 있어 건옥정리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여러 신문사에서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대체 건옥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왔다.
건옥이란 청산거래를 할 때 매매약정만 하고 수도결제를 하지 않은 증권을 말하는 것인데 청산거래의 핵심이 되는 단어이므로 여자의 정조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뜻에서「옥」자가 들어있는 것이라고 실명해주었다.
전화를 걸었던 모 신문경제부장은 재미있다고 껄껄 웃더니 다음날기사제목에 건옥이라는 두 글자가 대문짝 만하게 들어있었다. <계속> 【이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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