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2)|<제73화>증권시장<제자=필자>-건국국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지가증권에 이어 등장한 것이 건국국채다. 정부수립 이후 누적되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정부가 최초로 발행한 국채였다.
50년1월 제1회 건국국채가 발행되었을 때만 해도 단순히 건전한 제공을 유지하겠다는 목적이었으나 6·25가 터지자 사정은 달라졌다.
다급해진 전비조달을 위해 마구 찍어내야 했고 파는 것도 억지로 떠맡기는 강제적인 방법일수밖에 없었다.
사채금리가 월4∼5%하는 판에 국채 금리는 연5%에 불과했고 상환기일도 장기였던 까닭에 강제로 인수한 국채는 그야말로 똥값으로 거저 주다시피 방매되고 있었다.
오히려 담시의 경제상황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시의 엄청난 인플레와 당장 내일을 점칠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구인들 자진해서 장기국채를 사겠는가.
그나마 국채를 원활하게 소화할 수 있었던 방법은 소위 「끼워 팔기」였다. 행정기관에 허가를 신청해오는 기업들이나 무역업체들에 통관을 시켜주면서 일정량의 국채를 제도적으로 떠맡겼던 것이다.
직책이 재무부 증권담당관이었던 탓으로 나는 안 팔리는 국채소화를 독려하기 위해 수시로 지방출장을 다녀야했다.
어느 촌락에서 하룻밤을 유숙했을 때의 일이다. 잠을 청하려고 자리에 누웠더니 마주 보이는 창문에 건국국채가 다닥다닥 겹쳐 붙어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뚫린 창호지에 국채로 땜질을 한 것이었다. 혼자 얼굴을 붉히면서 마침 옆에 아무도 없었던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초기의 국채시세는 액면가의 10%만 주면 살수 있을 정도까지 휴지취급을 받았다. 누구 하나 팔려고만 했지 소중히 보관했다가 상환기일이 되면 원리금을 찾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세가 차차 회복되면서 경제도 안정기미를 보였다. 국채를 액면가 기준으로 쳐서 정부기관의 입찰보증금이나 통관보증금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자 점차 국채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갔다.
사겠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액면가의 10%까지 떨어졌던 것이 30%선으로 금세 회복되어갔고 매매도 활기를 띠었다.
고물상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채권을 사들이거나 영세 브로커들을 통해 채권들이 모아졌지만 대부분의 공급 루트는 재산께나 있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방매하는 것들이었다.
또 이들 방매물을 사들이는 쪽은 비교적 재력이 풍부했던 재단이나 토건업자·보험회사·무역회사 등이었다.
건국국채는 50년 1월부터 63년 1월에 이르기까지 모두 17회에 걸쳐 99억5천만 원이 발행되었다.
원래 약속대로 상환기일이 도래하는 채권에 대해 원리금이 지급되기 시작하자 공신력도 많이 회복되었고 거래도 한층 활기를 띠었다.
지가증권의 상환이 끝난 1955년 이후부터는 전체 증권거래량 중에서 국채거래가 차지한 비중이 80%를 넘었다.
한쪽에서는 전쟁을 치르는 판에 다른 한쪽에서 벌이는 증권거래라는 것이 오죽했을까마는 부산과 대구지방을 중심으로 알게 모르게 증시기반이 형성되고 있었다.
경남지방의 향교재단과 지주출신들이 중심이 되었던 고려증권은 52년8월 대한증권에 이어 제2호 면허를 얻어냈고 치안국장 출신인 김상봉씨를 사장으로 앉히면서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이어 대구지방에서 재력을 쌓은 심규학씨가 영남증권을 차렸고 같은 시기에 문무영씨가 부산에서 국제증권을, 또 교육사업에 몸담아 오던 박교준씨가 동양증권을 차렸다.
이들 증권회사들은 환도이후 즉시 증시의 무대를 서울로 옮겼다.
그 동안의 혼란이 차차 안정되어 감에 따라 근본적인 증시발전을 위해서는 하루 빨리 증권회사들끼리 힘을 합칠 수 있는 공식기구가 필요했다. 회사단위의 개별적인 거래에서 벗어나 정식으로 증권거래소를 만들기 위한 첫 단계 작업이었다.
1953년10월 대한증권에 각 사 대표가 모여 증권협회 창립을 위한 발기인대회가 열렸고 대표에 송대순씨가 선출되었다.
증권업계의 전권대사 격인 송씨는 재무부 측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당시 증권에 대한 이론 면에서도 일가견을 가진 인물이었다.
당초 서울증권업협회라는 명칭으로 창립인가를 냈으나 재무부 측은 대한증권업협회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설립을 허가했다.
초대회장에는 송대순씨가 취임했고 5명의 이사에는 5개 증권회사의 사장들이 선임되었다. <계속> 【이현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