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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척결, 학원 키우는 방향서"|사학재단 수사에 얽힌 얘기들 방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사학수사가 8일째로 접어들었다. 선인학원 설립자 백인엽씨가 구속된 데 이어 18일에는 경희대학원장 부부와 명지학원 간부들이 검찰에 연행 또는 소환심문을 받는 등 수사는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사학의 해묵은 비리가 정도의 차는 있지만 하나씩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문교부감사와 검찰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던 뒤 얘기들을 사회부 취재기자들의 방담으로 엮어 본다.
지금까지 수정사과에서 알려져 있지 않던 뒤 얘기들을 좀 해봅시다.
-우선 문교부가 상당히 당혹하는 것 같아요. 문교부의 감사는 일종의 행정행위로서 사학에 대한 경고 적 의미를 갖고 있었는데 현시점에선 엄청난 형사문제로 커졌거든요. 문교부가 감사결과를 발표한 것은「8·19면책조치」이후에도 일부 사립대학에 비리가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학원대책의 일환이었다는 거예요. 이번 검찰의 수사착수에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는 뒤 얘기입니다만….
-검찰의 이번 수사는 79년을 시점으로 했다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국보위가 작년 8월19일「사학운영쇄신 기본시책」을 발표하면서 그 이전의 학원비리에 대해서는 불문에 붙이겠다고 했으니까, 사학의 부정입학이나 부정 편 입학 사항 등을 캐기 위해서는 아무래도「8·19」조치 이전인 79년부터 수사하는 것이 바람직했던 것 같습니다.
-수사개시 첫날인 12일, 대검특별수사본부 수사관들은 선인학원 관계자들을 연행하고 장부를 압수하는데 관광「버스」를 대절했지요. 학교가 14개나 되어 평소처럼「마이크로버스」나 용달차로는 어림도 없었답니다.
-처음 3일간은 검찰이 애를 먹었어요. 학사부정이 엄청나게 쏟아져도 모두「8·19조치」 에 묶여 도저히 형사처벌이 불가능 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지요. 경리부정은 백씨를 비롯해, 그 부하(?)들이 일체 입을 다물고….
4일째는 그때까지 분리 심리하던 백씨와 경리 계 직원을 한방에 넣었답니다. 그 자리에서 백씨와 경리 계 직원이 비밀구좌에 관한 얘기를 했다는 겁니다. 백씨가『비밀구좌가 드러나면 안 되는데…』라고 한말이 수사장비에 포착되었지요. 즉시 두 사람을 분리하고 추궁 끝에 결정적 증거인 은행 비밀구좌를 찾아냈고 백씨의 엄청난 비리가 쏟아져 나왔다는 겁니다,
-1천2백 평 짜리 가족묘지는 15세 짜리 막내아들 명의로 6백 평, 부인이름으로 6백 평을 나누어 등기를 했답니다.
-백씨가 유용한 7억5천만 원의 사용회수인 1백80회를 일일이 대조, 확인하는 과정에선 교수「스카우트」비란 항목까지 나와 4백 만원을 받고 선인학원에「스카우트」된 박 모 교수가 검찰에 나와 사실을 진술하기도 했지요.
-28억 원 유용은 구속 다음날 발표되었는데 사용 처에 대해선 검찰이 정계·학계 등에 인맥형성을 위해 주로 사용했다고 밝힐 뿐 저명인사가 많이 포함되어 명확한 것을 알리기가 거북한 모양이더군요.
-인천출신의 전 국회의원 Y모씨가 5백 만원을, 정계거물이던 M모씨가 3천9백 만원을 갖다 썼다는 게 흘러나올 정도지요.
-친지양복대란 명목으로 1억 원 대가 지출된 것도 있어요.
-M씨는 전화를 거니까 자신이 정치를 할 때는 너무 바빠 가보지도 못하다가 정치에서 손을 뗀 뒤엔 시간도 한가하고 옛「전우」가 좋은 일을 한다기에 가끔 학교에 나가 보면 용돈이라면서 2백∼3백 만원씩 건네주었다는 거예요.
-백씨 구속 전에 초조하던 검찰이 17일 자정 후부터는 활기에 찼던 것 같은데 이는 상부의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라 지요?
-확증을 잡고 구속방침을 세운 것은 16일이에요. 사학재단의 설립자이고 예비역 장성으로서의 과거업적을 참작, 상부의 결심을 받으려고 했지요. 측근에서 나온 얘기론 17일 하오 5시쯤 허형구 검찰총장이 직접 고위층을 만나 수사결과를 설명하려 했는데 약속이 잘 맞지 않았대요. 서류를 그곳에 그냥 두고 검찰청에 돌아와 대기하던 중 직접 전화통화가 됐고 전화를 통해 자세한 설명이 있었답니다. 그 자리에서 상부의 결심을 얻었고 검찰은 바로 영장작성에 들어갔다는 거예요.
허 총장이 퇴근 후 다시 상부에서 전화가 왔으나 통화가 안됐고, 밤10시쯤 허 총장 집으로 전화를 걸어『수고했다』는 격려가 있었답니다. 검찰의 사기가 오를 수 밖 에요.
-취재기자들도 영장이 발부되던 날 밤을 꼬박 뜬눈으로 새웠지요?
-그래요. 사진부 최 기자와 검찰청 건물주위에 잠복(?)하고 있었지요. 밤 11시30분쯤 3명의 인사가 조용히 수위실 문을 통해 빠져나가더군요. 사방이 어두워 분별이 안돼요. 급히 수위실에가 물으니 15층 조사 실에서 나오는 사람들이래요.
순간적으로『구속집행이구나』하고 생각했죠. 최 기자는 무조건 승용차를 가로막고「카메라·플래시」를 터뜨렸는데 현상을 해보니 그때까지 참고인진술을 하고 나가던 바로 M, K씨 더 군요.
-검찰의 선인학원 수사착수가 보도되면서 검찰청에는 연일 인천에서 부친 시민들의 편지가 5∼6통씩 배달되고 있어요.
그 동안 백씨에게 당했던 시민들의 진정과『검찰이 참으로 일 잘한다』는 격려편지가 대부분입니다.『이 세상에 백인엽이 잡아넣는 곳이 있는 줄 몰랐다』는 편지도 있고요.
-19일 대검찰청에 나온 경기도교육감도『잡아넣어 줘 고맙다』고 인사 하더래요. 검찰관계자는 책임을 느껴 부끄럽다는 말을 못하고 고맙다니 웃기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분명 선인은 교육감의 감독권 밖에 군림했던 모양입니다.
-『백씨가 무서워하는 사람은 셋뿐』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 세 사람이란 고 이승만 대통령, 형님인 선엽씨, 그리고 별세한 어머니랍니다.
-19일 문교부를 찾은 백선엽씨는『동생이 이렇게 많은 일을 저질러 놓은 줄 몰랐다. 동생은 교육사업을 한다고 나설 염치가 없게 되었다.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학교덩치가 저토록 컸으니 그곳에서 교육받는 아이들과 교사에게 피해가 가서는 안 된다』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답니다.
-어쨌든 오늘의「선인」을 키우는데는 백씨의 독특한「스타일」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라는 말이 있어요.
처음 설립당시엔 변소를 자신이 직접 퍼내고 물 사용이 많아진다고 지금도 수세식변소가 하나도 없데요. 거기다 학원구내엔 수백 대의 차량이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을 만들어 놓았지요.
백씨는 늘『지금은 우리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지만 언젠가 외국처럼 자가용을 몰고 등교할 날이 있지 않겠느냐』며 주차장을 만들었대요. 하여간 통은 크다고 하더군요.
체육관 규모만 봐도 그렇지요. 건설과정에 큰 무리와 부작용을 빚었지만 그 업적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검찰수사과정에서 어려운 국가재정 아래에서 사학이 이 나라 교육에 끼친 공을 인정해서 과잉수사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수사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걱정 같아요. 또 운영의 어려운 점도 배려가 돼야 한다는 주장들도 있지요. 대만처럼 사립학교를 세우면 국가가 훈장을 주고 최고의 명예를 부여하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조영식 학원장 연행사실은 중앙일보의「특종」인데 검·경 출입기자들의 합동작전의 결실이지요?
-19일 아침이었어요. 평소 안면이 있는 경희대 이사장 측근으로부터 들은 이야긴데 18일 조씨 부부가 학교와 집에서 각각 연행돼 간 뒤 아직 돌아오지 않아 궁금하다』는 내용의 전화가 경찰 출입기자로부터 걸려 왔어요.
연락을 받자마자 바로 검찰청 15층에 뛰어 올라가 보니 평소에 꼭 잠겨 있던 검사질 문이 이날 따라 열려 있었어요.
그때가 점심시간이라 수사관과 조사 받는 사람들에게 배달되는 설렁탕이 들어가는 순간이었지요.
설렁탕을 뒤따라 들어가 문을 여는 순간 아니나 다룰까 조 학원장이 단정하게 앉아 있지 않겠어요. 그때까지도 검찰은 연행사실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 왔었지요.
경희대 모 교수는 신문을 보더니 혐의가 있든 없든 얼굴을 들고 학생들 앞에 나설 수가 없다고 한숨짓더군요.
-경희대는 교무처·학생처 관계자들이 검찰에 소환되고 모든 장부가 압수되는 바람에 업무가 마비됐어요. 어느 여학생은 교사발령을 받았지만 학교에서 교사자격증을 발급 받지 못해 항의를 하더군요.
-명지대에서는 재단운영 사업체와 학교사이에 돈 거래가 빈번했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학교에서 M건설로 돈이 나갔다가 돌아오고, 또 돌아왔다가는 나가고, 그러다가 수사착수 시점에서 나갔던 돈이 미처 돌아오지 못했으면 앞으로 유용판정이 나게 될지도 모르는 얘기지요.
-어쨌든 옥석을 하루속히 가려 이들 사학이 정상을 하루속히 되찾고, 수많은 학생들과 교수들이 이로 인해 간접적인 피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돼야 하겠습니다.
-사학비리에 대한 검찰수사는 정당한 조치지만 지금까지 인재양성에 끼친 공로를 참작할 때 단순한 사기·절도·횡령과 같은 파렴치범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곤란하다는 여론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대학의 75·5%가 사립입니다. 소위 명문이라는 대학을 비롯해, 이들 대부분이 과연 얼마나 많은 재력을 갖고 시작했느냐를 따지면 오히려「교육입국」이라는 의욕·의지·이상을 갖고 맨주먹으로 시작한 경우가 더 많겠지요. 따라서 성장과정에서 비 상식·무리 같은 것이 따랐다고 봐야겠습니다.
-학원을 이윤단체로 이끌어 간 일부 탈선 교육자 때문에 전체사립을 매도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참석자>
▲고정웅 사회부 차장
▲권순용 사회부 기자
▲전채훈 사회부 기자
▲권 일 사회부 기자
▲한천수 사회부 기자
▲김수길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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