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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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미 시민사회로 전환한 우리사회엔 특권층, 즉 특권계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사회의 요건은 인간의 평등이며 우리헌법은 제정당시부터『모든 국민은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생활의 모든 면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사회적 특수계급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문화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전대통령이 요즘 지방순방중에 법의 준수를 당부하며 「특권층」의 권력남용을 경계한 것은 관심을 끈다. 물론 최근 국회의원 입후보자의 범법과 사학재단의 비리에서 연유된 발언이지만, 사실상 정부수립 이후 30여년동안 특권층의 존재는 계속 운위돼 왔고 이들의 부조리가 지탄을 받지 아니한 때는 없었다. 이상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특권층이 현실적으론 엄연히 존재하면서 갖가지 비리를 저지르고 있어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다시 한번 실감시키는 것이다.
한 시대 승려나 귀족 등 특권층이 인정되었던 서양에서조차 시민사회의 확립과 함께 신분에 의한 차별적 지배가 타파되고 법앞의 평등에 의해서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
우리 역시 지금 특권층이라고 막연히 지칭하는 정치인·고급관리·자본가사회 지도회인사등에게 법을 어기고 마음대로 행동할 하등의 우월한 지위나 권리를 주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근대시민사회에 있어서의 정치가나 고급관리 등 공직자는 국민의 위임을 받은 공복이지, 군림하는 지배자는 아니다. 자본가는 창의와 근면으로 산업을 일으키고 경제를 번영시키며 그 과정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지, 거기에 어떤 신분적 특권이 따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리가 이런데도 특권층이 발호하는 원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우리사회 일각에 아직도 남아있는 폐쇄성 때문이다. 폐쇄성은 한국이라는 전통적 유교사회의 특수성 때문에 근대시민사회로의 적응이 불가항력적으로 지체된 데서 생긴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직자 사회의 그것은 이기적 욕심때문에 더욱 조장된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날의 통치방식이 가부장적인 권위와 민주적인 지도원리의 혼합과정에서 예외없이 권위쪽에 기울게 됐고 결과적으로 협력의 집중과 독단적인 정책결정을 가능하게 했다. 자연히 통치자를 둘러싼 소수의 집단이 특권층을 형성하면서 변칙적인 여러형태의 부조리를 저질러 온 것이다. 이것은 시민사회로의 이항을 저해하고 있는 점에서도 우리가 타기해 마지 않을 일이다.
바로 특권층의 부정부패를 흔히「협력형 부조리」라 부른다. 70년대 후반에는 권력형 부조리는 사라졌다고 공언돼 왔으나 지금도 번번이 이들의 부패상이 들추어지곤 한다.
협력의 집중은 불필요한 인·허가사항까지 관이 간섭하게 됐고, 이것이 마치 공직에 주어진 특권으로 인식되면서 필연적으로 뇌물의 수수가 이루어져 왔다.
서정쇄신의 구호아래 지속적으로 이들에 대한 색출작업이 전개됐으나 그럴수록 공직자의 부조리는 지능적이고 전문적이 됐다는「아이러니」도 빚었다.
진정한「법의 정신」의 발휘야말로 특권층의 권력남용을 배제하고 특권층 그 자체의 생성을 거부하는 것이다.「법의 지배」란 질서 유지를 위한 사회적 강제의 측면보다는 국가기관의 권력남용이나 법의 불평등적용, 나아가서 협력자의 임의입법을 견제하려는 성격이 강한 것이다.
또「법의 이념」은 정의라는 수단을 통해 궁극적으로 선이라는 도덕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특권층이 법을 어기는 것은 결국 선이라는 인간의 최고 덕목을 배반하는 결과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나아가 협력분산을 통한 참여학대로 폐쇄성을 탈피하는 사회, 곧 개방사회로의 지향이 특권층의 형성을 막는 길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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