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美 국방부 '과다 보유 프로그램' 전면 재검토 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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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군이 보유한 장비·무기를 경찰에 공급하는 미 국방부의 ‘과다 보유 프로그램(Excess Property Program)’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퍼거슨 사태’에서 중무장한 경찰의 과잉 진압이 여론의 비난을 받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간)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백악관이 직접 프로그램 검토에 나선다고 보도했다. 백악관은 경찰에 지급된 군 장비의 사용처를 파악하고 장비 사용을 위한 경찰의 교육 훈련은 이뤄졌는지 살펴서 프로그램의 지속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지난 9일 미주리주 퍼거슨 시에서는 흑인 청년이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이후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경찰은 산탄총·M4소총·장갑차·지뢰방호차량 등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했다. 이처럼 군에 맞먹는 수준으로 퍼거슨 시의 경찰이 무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국방부에서 공급했기 때문이다. ‘1033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이 제도는 군이 초과해서 보유하고 있는 장비와 무기를 경찰 등 지역 법집행 기관에 넘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미 언론은 이것들이 실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사용된 장비라고 지적하며 “퍼거슨이 전쟁터냐“고 비판했다.

미국 경찰은 1990년대 초부터 군 장비를 지급받았다. 마약 조직을 소탕한다는 명분이었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이후 경찰의 무장은 강화됐다. 지역 경찰이 테러와의 전쟁 최전선에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에릭 홀더 법무장관도 최근 “지역 경찰이 테러와의 전쟁을 지원해야한다는 요구가 커지면서 군 장비가 대거 이전됐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006년 3300만 달러(약 336억 원) 규모의 장비 3만4708건이 이전됐지만, 지난해엔 4억2000만 달러(약 4275억 원) 규모에 달하는 5만 1779건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지역 경찰은 법무부와 테러 이후 신설된 국토안보부를 통해 수십 억 달러의 예산도 지원받았다.

백악관의 재검토와 별개로 다음달엔 의회의 청문회도 이뤄진다. 민주당의 클레어 맥카스킬(미주리주) 상원의원은 “경찰의 과잉 대응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며 "경찰이 군대처럼 무장한 경위를 파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방부 측은 군을 통해 지급된 무기가 현 사태의 원인으로 비춰지는 것을 불편해하는 모양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주 “지역 경찰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군에서 지급된) 장비들이 수많은 목숨을 구하고 시민을 보호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국방부를 통해 지역에 공급된 무기는 일부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무기 상당수는 별도의 예산으로 구입했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 군수국에 따르면 1033 프로그램을 통해 지급된 군용 장비 중 무기는 5%에 그쳤다. 국방부는 2007년 이후 퍼거슨 경찰에 험비 2대, 발전기 1대, 화물 트레일러 1대를 공급했다고 밝혔다. 퍼거슨 시에 경찰력을 지원하는 세인트루이스 시에는 권총 6정, 소총 12정, 헬리콥터 3대, 험비 7대, 폭탄처리장비 등이 공급됐다. 1033 프로그램이 경찰 무장 강화의 근본적 원인이 아니라는 해명이다.

NYT 역시 미국의 방대하고 방만한 조직 탓에 발생하는 관리 문제를 지적했다. 주 정부를 통해 지역 경찰에 분배된 예산으로 어떤 장비를 구입했는지 추적이 어렵고, 지역 경찰이 공급받은 장비를 적절히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 받았는지 여부 역시 연방정부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사진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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