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살해 혐의’ 재미교포 이한탁씨 25년 만에 석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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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호 02면

불을 질러 친딸을 살해한 혐의로 25년간 수감됐던 재미교포 이한탁(79·가운데)씨가 22일(현지시간) 구명위원회 관계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보석심리가 열린 해리스버그 연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작은 사진은 수감 초기 이씨의 모습. [뉴욕=뉴시스]

친딸을 살해한 혐의로 감형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25년간 복역해 온 재미교포 이한탁(79)씨가 22일(현지시간) 보석으로 풀려났다.

화재로 딸 사망해 종신형 … 8번째 항소서 유죄 평결 무효로 보석

 이씨는 이날 보석심리를 받기 위해 수감돼 있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하우츠데일 주립교도소를 나왔다. 회색 양복으로 갈아입은 이씨는 ‘이한탁 구명위원회’ 손경탁 위원장, 김영호 목사 등과 함께 승용차로 2시간 30분 거리인 해리스버그 연방법원으로 향했다.

 보석심리를 주재한 마틴 칼슨 판사는 40분 만에 이씨에게 최종 보석판결을 내렸다. 이씨는 판결 직후 취재진 앞에서 미리 준비한 소감문을 읽었다. 그는 “세상천지 이렇게 억울한 일은 역사에 없을 것”이라며 “지난 25년간 수고해 준 여러분들에 대한 보답으로 더 보람되게 살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앞으로 머물게 될 뉴욕 플러싱으로 향했다.

 이씨의 구명운동을 펼쳐 온 김영호 목사는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이 선생님은 ‘25년 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다’며 놀라기도 했지만 사회에 적응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달라고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보석판결 후 이씨가 처음 찾은 곳은 한식당이었다. 그는 뉴저지 포트리에 있는 ‘북창동 순두부’를 찾아 두부 한 모와 순두부로 식사를 마쳤다. 함께했던 구명위원회 관계자는 “이씨가 반찬과 숭늉까지 깨끗이 비웠다”고 말했다.

 이씨의 수감생활은 1989년 7월 29일 발생한 화재로 큰딸 지연(당시 20세)씨가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78년 이민 와 뉴욕에서 의류업을 하던 이씨는 딸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화재 전날 펜실베이니아주의 교회 수양관을 찾았다. 새벽 발생한 화재에서 이씨는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딸은 목숨을 잃었다. 미국 검찰은 이씨의 옷에 묻어있던 휘발성 물질을 증거로 그를 용의자로 지목했고 법원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사건 직후 이씨의 철도고 4년 선배인 손경탁씨를 중심으로 구명위원회가 결성됐다. 2008년 7번째 항소마저 기각됐지만 2012년 8번째 항소에서 피터 골드버그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맡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지난 5월 항소법원은 당시 화재감식 기법이 비과학적이라는 점을 인정했고, 지난 19일 이씨에게 적용된 유죄평결과 형량을 무효화하라고 판결했다.

 미국 검찰은 오는 12월 6일까지 항소하거나 새로운 증거를 찾아 재기소해야 한다. 하지만 구명위 측은 재기소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구명위 관계자는 “과거 유죄평결 당시의 증거들이 모두 무효화돼 검찰이 다시 증거를 찾아 재기소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검찰이 항소하지 않으면 이대로 무죄가 확정돼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된다”고 말했다.

박종화 인턴기자 hjmh794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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