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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장편소설이 많이 나온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전작장편소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계간문예지가 양적으로 줄어들어 중·단편의 발표지면이 줄어들자 작가들이 그 돌파구를 전작장편소설의 단행본출간에서 찾기 시작한 것이다.
출판사들도 「데뷔」2∼3년의 신인들 작품을 내서 성공한 것에 고무되어 가능성이 보이는 신인·중견들에게 전작을 의뢰하고 있으며 일부 출판사에서는 규정인쇄 외에 원고료 조로「프리미엄」을 주면서 이들 작가를 확보하려하고 있다.
최근에 나온 신작장편소설은 한승원씨의 『신들의 저녁노을』, 김병총씨의 『춤추는 맨발』, 서동훈의 『해를 먹는 부엉이』, 이성우씨의 『떠다니는 뿌리』, 이대환씨의 『미완성의돌』, 김진희씨의 『겨울나비』, 김주영씨의 『아들의 겨울』, 표성흠씨의 『여자가 목마를 타고』, 최고씨의 『안개울음』 등 10여편. 이외에도 김성동씨가 6·25를 소재로 한 소설을 준비하고 있고, 이문열씨도 스스로 대표작으로 생각하고 있는 대 장편을 구상하고 있으며, 유익서씨는 첫 장편을 계획하고 있는 등 신작 장편이 많이 나올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 장편소설은 거의가 일간신문이나 월간·계간문예지에 연재됐던 것을 묶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재라는 형식의 특수성 때문에 장편소설이 가지는 문학적 진수 제대로 보여주기 어려웠고 원고료와 인세를 따로 받는 이점이 없기 때문에 전작장편은 자연히 기피돼 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몇몇 계간지와 월간지의 폐간은 작가들로 하여금 전작장편 쪽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지난 한해동안 단편문학에서 뛰어난 작품이 별로 나오지 않았다는 점도 전작장편 「붐」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최근에 나온 전작장편의 또 하나의 특징은 5백장안팎으로 발표했던 중편을 l천장이상의 장편으로 전면개작, 전작장편으로 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 정연희씨의 『늪에서 나온 사람』, 김주영씨의 『아들의 겨울』, 이성우씨의 『떠다니는 뿌리』 등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 역시 잡지 쪽의 발표지면이 좁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전작장편 「붐」에 따라 몇몇 출판사와 잡지사들은 거액의 상금을 내걸고 전작 장편을 현상모집하고 있다. 이대환씨의 『미완성의 돌』은 첫 당선한 작품에 해당한다.
전작장편이 「붐」을 이루는 현상을 문단에서는 문학적·측면에서 단편문학의 퇴조, 장편문학시대의 도래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단편소설이 작은 분량 속에 알찬 내용을 담으려면 날카로운 시각을 가져야만 한다. 최근의 현실여건은 이 같은 작품의 양산을 기대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들은 장편으로 자신들의 발표의욕을 만족시키고 작가로서의 승부를 걸어 보려하고 있다는 풀이다. 여기에 출판사들이 동조하게 됐다.
출판사들이 신작장편을 내놓게 된 것은 발표할 지면을 잃은 작가들의 요구가 컸던 점도 있지만 오랜 불황 속에 그래도 일부작가들의 작품집이나 수상록이 팔렸기 때문이다. 신작장편의 경우도 K사에서 이외수·한각수·이광복 등의 작품을 내어 성공했던 예도 있다. 이 때문에 출판사들은 신인이나 중견 중에 유망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전작을 쓰게 하려고 애쓰게됐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씨는 신작장편이 많이 나오고있는 것에 대해 일단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씨는 연재소설을 출판할 경우 개작을 한다하더라도 연재소설의 성격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으나 신작장편은 작자가 자신의 심혈을 다한 작품을 완벽한 구상아래 쓸 수 있다고 보고있다.
김씨는 그러나 최근에 나온 작품들 중에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쉬운 일이라고 말하고 좀더 많은 재능 있는 작가들이 전작장편을 발표해 장편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정립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문단은 지금 침체된 느낌이 없지 않다. 몇몇 신인·중견급들의 작품활동은 활발하지만 중량감 있는 작가들의 문제작은 보기 어렵다. 신작장편 출판「붐」과 함께 이들 작가들의 역작이 기대되고 있다.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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