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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천적|안병섭 <서울예전대 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한국 영화계는 요즘 심각하다. 「컬러·텔리비전」의 방영으로 극심한 불황에 빠져들었다며 영화계서는 허탈상태인 것이다.
지난해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 (『사람의 아들』)이 개봉 극장에서 관객이 1백명 밖에 동원되지 않았다느니. 정초부터 심한 추위와 폭설로 극장가는 한산했고, 방향도 못 잡고 제작자들은 제작자들대로 진정서를 내고, 영화인들과 극장 협회는 그들대로 건의서를 내는 등 신춘이 온통 부산했다.
신문에서도 한국 영화의 불황이니 위기니 하고 대서 특필하고 타개책에 대한 의견들을 심고 있다.
그런데 한국 영화는 10수년 동안 언제 한번 불황 아닌 때가 없었고 위기 아닌 때가 없었다.
아마 그 동안의 신문들을 보면 불황과 위기를 거론 안한 해는 한번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은 정말 불황이고 또 정말 위기라고 모두들 생각하는 것은 그 막강한 영화의 천적(?) 「컬러·텔리비전」의 등장 때문이라는 것이다.
참 그럴싸한 이야기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계서는 문제의 책임을 항상 영화계 밖으로 돌렸다는 점이다.
정책이 어떠니, 검열이 어떠니, 그리고 이번에는 「컬러·탤리비전」이다.
일부 건의서에서는 「텔리비전」에 한국 영화를 상영할 수 없도록 결의했다느니 외화 상영까지 규제의 뜻을 비치기도하고 「텔리비전」 외화와 한국 영화의 검열 일원화까지 들고 나왔다. 다 일리가 있는 말이요 주장이다.
70년대 영화 정책과 검열이 한국 영화를 그르치게 한 하나의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좀더 영화를 만드는 쪽에서 그런 외부 책임 전가식의 수동적 자세가 아니라 스스로가 재미있고 좋은 영화를 만들지 못한 책임, 그리고 언제나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자세가 없었던 것을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하나가 흥행에 성공하면 그 아류가 줄줄이 사탕이요, 기획에 모험이 없고 안이하고 「쿼터」나 노리려고 한 소극적 자세로 또 이번의 불황과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좀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이고 앞서 난관을 극복하는 자세라야지 무얼 고쳐달라, 무얼 어떻게 해달라 하는 수동적인 자세만이 앞서면 또 다음해에도 위기요 불황의 연속이 될 뿐이다. 그러고 보면 영화의 천적은 「컬러」 TV쪽보다 바로 영화 종사자들의 마음속에 더 크게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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