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지와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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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6·25동란이 발발하기 얼마 전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있었던 일이다.
「워싱턴·포스트」지 직원들이 속속 출근하던 틈을 비집고 백발의 한 동양신사가 이 신문사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더니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누굴 찾아오셨습니까?』 정문 수위가 물었다.
『귀 신문사의 편집국장을 만나러 왔습니다.』
노신사의 대답은 간단했다.
『약속이 있었습니까?』
『아니오.』
『혹시 편집국장의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모르오.』
『선생님 성함은 어떻게 되지요?』
『나 이승만이라고 하오.』
『실례지만 무엇하는 분인가요?』
『나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오.』
깜짝 놀란 「워싱턴·포스트」지의 수위는 구내전화로 편집국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한참 후에 이박사는 힘겹게 「워싱턴·포스트」의 편집국을 방문할 수가 있었다.
망국의 설움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체험했던 이박사는 갓 해방된 한국을 북한이 계속 넘겨다보고 있음을 미국여론에 주지시키기 위해서 대통령이란 신분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신으로 「워싱턴·포스트」두를 찾아가 대미홍보외교를 벌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30여년. 한국의 전두환대통령은 미국대통령「레이건」의 공식초청을 받고 80여명의 대부대를 이끌고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정부의 귀빈숙소인 영빈관에 묵으면서 백악관에서 한미정상회담을 가졌다.
방미중인 한국의 대통령을 회견하기 위해서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30여 개의 미국의 주요 신문·방송·통신사들이 줄지어 신청을 했으나 청와대측은 너무 바쁜 전대통령의 일정 때문에 「인터뷰」요청을 들어줄 수가 없었음을 안타까워했다.
30년전만해도 한국의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의 편집국장을 직접 찾아가 만났으나 이제는 한국신문의 「워싱턴」특파원이 「포스트」의 편집국장과 허물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됐고 오히려 「워싱턴·포스트」기자가 한국의 대통령을 만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상황이 됐다. 세상 참 많이 변한 생각이 들지만 사실은 지금의 상황이 정상이다.
옛날일과 지금의 상황에서 대단한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만큼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는 이박사와 같은 수많은 선인들의 피와 땀이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을 사는 우리에겐 자연히 내 조국을 더욱 훌륭하게 가꾸어야할 책임이 뒤따른다.
이제 성년한국이라는 개념은 광복 이후의 산술적인 나이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사회·외교·국방·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의 성숙도로 측정돼야 할 것이다. <김건진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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