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서정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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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끝없이 배우고 익히는 게 인생입니다. 그래야 우리 몸에 잡스러운 것이 못 들어오지요….』
정신력으로 건강을 지킨다는 미당 서정주시인(67).
『젊어서는 내 몸이 아닌 것처럼 시상따라 몸을 마구 썼지요. 자연히 몸이 쇠약해져 늑막염과 신경쇠약으로 3년 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지우들과 어울려 권커니 자커니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즐겨 선친의 유산도 날릴 정도였다고 미당은 웃었다.
『돌이켜보면 남들이 말하는 보통생활과는 다른 생활을 한 것 같아요. 오로지 시세계에서 살다보니 정신건강만은 최상이었지요.』
고희를 앞둔 이제 그는 자신으로 돌아와 차분히 몸과 마을을 가다듬는 듯하다.
『술을 좋아하다 보니 소화불량에 걸려 10년 전부터 선식을 시작했지요』-미당은 말한다.
선식이란 옛날의 선인들이 들었다는 7가지 곡류의 혼합식. 쌀·보리·찹쌀·검은콩·들깨·율무·검은깨를 섞어 갈아 미숫가루로 만든 것으로 소화에 좋다는 것이다.
아침은 언제나 선식으로 가볍게 하고 점심은 주로 국수로 때우는 게 요즘 그의 식생활.
『선식의 덕을 본 것은 지난번 「멕시코」에 갔을 때였어요. 여행 중 몸이 극도로 쇠약해진다는 고산지대여서 고산병에 걸렸는지 코와 입으로 많은 피를 쏟았으나 잘 견뎌 용케 살았어요.』
그래도 여행이 좋아 내년에는 부인과 동반하는 세계일주를 구상중이란다.
올 들어 다시 여러 가지 공부를 시작했다는 미당은 한없는 시정신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시집을 펼쳐본다.
『이제 다시 공부를 하는 정신으로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볼 생각입니다. 물론 건강이 뒷받침되어야겠지요.』
그러면서 미당은 부인 방옥숙씨(61)를 웃음을 머금고 바라본다.
『나의 건강은 아내의 세심한 건강관리 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내가 좋아하는 갈치·멸치 등 젓갈과 굴비를 고향에서 사다가 직접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라며 자신의 건강에 자상히 신경을 써주는 내조의 공이 너무나 크다고 했다.
안뜰에 푸른 대나무사이로 소복이 쌓여있는 1백여 개의 빈 맥주병이 미당의 건재함을 은연중에 과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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