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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록 KB금융 회장 이건호 국민은행장 모두 경징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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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넉 달을 끌어온 KB 내분 사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대한 감독당국의 중징계 방침이 결국 무산되면서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은 일단 자리를 지키게 됐다. 하지만 양측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황이라 한국 대표 금융사의 파행경영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21일 금융감독원은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주전산기 교체 문제를 둘러싼 내분, 도쿄지점 부당대출 등 각종 금융사고와 관련해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각각 ‘주의적 경고’의 경징계를 결정했다. 금감원이 두 사람에게 사전에 통보했던 중징계를 제재심의위가 경징계로 수위를 낮춘 것이다. 제재심의위 관계자는 “두 CEO가 내분 사태로 물의를 일으키고 은행의 평판을 훼손한 점은 인정되나 중징계는 과도하다는 데 위원들의 의견이 많았다”고 밝혔다.

 제재심이 승자도, 패자도 없이 마무리되면서 ‘후폭풍’이 거셀 전망이다. 당장 양편으로 갈린 KB금융 내부의 책임공방이 가열될 전망이다. ‘엄정 제재’를 공언했던 감독 당국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KB금융의 내분 사태가 표면화된 건 4월 주전산기를 기존 IBM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로 교체하기로 한 이사회의 결정에 이 행장과 정병기 감사가 결정 과정에 하자가 있다며 반기를 들고 나서면서다. 이사회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이 행장 측은 5월 금감원에 특별검사를 요청했다. 금감원은 특검을 거쳐 두 CEO에게 각각 중징계를 사전 통보했다. 임 회장과 이 행장에게는 내분 사태의 책임과 함께 각각 카드 정보 유출, 도쿄지점 부당대출 사건의 관리 책임도 덧붙였다. 최수현 원장은 “금융질서 확립과 금융윤리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제재하겠다”고 강조했었다. 하지만 징계를 확정하기 위한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우선 임 회장에 대한 중징계 근거였던 카드정보 유출과 관련해 감사원이 다른 해석을 내놓고 나섰다. 주전산기 문제를 놓고도 진통이 거듭됐다. 검사 과정에서 임 회장과 이 행장 명확한 비리 혐의나 지휘·명령 관계가 뚜렷이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의위원들 사이에서도 중징계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이 잇따라 나왔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금감원은 심의위원들을 상대로 막판 설득 작업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제재심의위의 결정은 금감원장이 확정한다. 규정상으로는 금감원장이 제재수위를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그간 이를 행사한 경우는 한 차례도 없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KB 내분 사태는 연이은 낙하산 인사, 이로 인한 지휘체계 문란에서 빚어진 문제”라며 “이를 ‘제재’로 풀려 한 금감원의 시도 자체에 애초 무리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조민근·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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