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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금리 인하 정책 바람직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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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일러스트=강일구]

논쟁의 초점 최경환 경제팀이 내수 활성화와 경기부양 정책을 추진하면서 최근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우리 경제정책에선 유례없는 고강도 부양책이 실시되고 있으나 시장에선 과연 금리 인하가 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지를 놓고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이미 우리 가계가 저축은 줄고 부채가 많아 추가 소비 여력이 없다는 점에서 금리 인하 효과가 별로 없다고 보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이미 시장에서 경제심리가 살아나는 시너지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입장도 있다. 양쪽 입장을 모두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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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금리 인하도 고민해야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

지난 14일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가뭄 속 단비 같은 소식이다. 정부가 ‘41조원 플러스 알파’라는 재정 확대 대책을 내놓은 데 이어 기준금리까지 떨어지면서 내수 침체에서 벗어날 단초가 마련됐다.

 현재 내수 침체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회복세가 나타났지만 올 들어선 주춤했고,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아예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4분기에 0.9% 성장했던 서비스 생산은 올해 1분기 0.5%로 둔화되더니 세월호 충격 이후인 2분기에는 -0.1%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광공업생산도 0.9%에서 0.5%로, 다시 -0.9%까지 급락했다. 소매 판매도 -0.4%로, 건설기성도 -0.8%로 일제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런 흐름은 7월까지 이어져 소비심리와 투자심리가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됐다. 내수 침체가 이렇게 심각했기에 정부가 사실상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내수 부양에 나섰던 것이고, 금통위도 기준금리 인하로 화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부와 금통위가 한 뜻으로 내수 활성화에 나서면서 경제심리도 조금씩 살아나는 조짐이다. 7월까지 악화일로를 걷던 투자심리와 소비심리도 아마 8월에는 꽤 회복될 것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기준금리 인하의 약발이 잘 먹힐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 있다. 우선 확장적 재정정책이 단행된 직후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재정 확대가 마중물이 돼 민간 소비와 민간 투자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낮은 금리가 필수적이며, 역으로 기준금리 인하가 실제 투자로 연결되기 위해선 정부의 정책금융 확대와 세제 지원 등이 긴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검증된다. 경기침체에 빠졌던 2008~2009년에도 재정 확대와 기준금리 인하가 동시에 이뤄졌고, 2012~2013년에도 마찬가지다. 그 덕에 한국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그나마 잘 극복한 사례로 손꼽힐 수 있었다. 기대물가상승률이 2002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점도 우호적인 여건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기대물가상승률이 낮고 안정적일수록 기준금리 인하가 실질금리 하락으로 이어져 실제 투자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진다. 신용경색이 없고 금융시장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점, 원자재가격 상승이나 환율 상승 같은 공급 측 물가 상승 압력이 거의 없다는 점도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우려도 존재한다. 정부가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한 데 이어 기준금리까지 인하되면서 가계부채가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과도한 가계부채는 원리금 상환 부담을 키워 소비를 짓누른다는 점에서 정당한 지적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정부는 가계부채보다 가계소득이 더 빨리 증가하도록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새 경제팀이 발표한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저소득근로자에게는 근로장려세제와 최저임금 상향조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근로능력이 있는 실업자와 니트족을 위해 취업 알선과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근로능력이 없는 무직자에게는 사회보호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재정 확대에 이어 기준금리가 인하되면서 내수활성화 대책의 모양새는 어느 정도 갖춰졌다. 그렇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두 정책의 시너지 효과로 올해 경제성장률이 약 0.2%포인트 올라갈 것으로 기대되지만 여전히 세월호의 경제 충격을 씻어내기에는 미흡한 수준이다. 게다가 대외여건도 악화하고 있다. 국제기구의 세계 경제 전망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고 미국의 출구전략에 따른 신흥국 금융불안, 유럽의 디플레이션 우려, 우크라이나 사태 등의 지정학적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정부와 금통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외여건이 악화되고 내수 침체가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정부는 선제적으로 추경을 편성하고 금통위도 추가 금리 인하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

소비 활성화 효과 별로 없어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5%에서 2.25%로 인하했다. 이에 따라 시장금리도 하락하고 있다.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공시되는 은행별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기준금리 인하 이후 1주일 만에 평균 2.3%로 내려왔다. 당분간은 더 하락할 것이다. 금리를 내릴 은행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올해 소비자물가 전망을 1.6%로 본다면 1년 만기 은행예금의 ‘세후 실질 금리’는 현재 0.3%에 불과하며 금리 조정이 마무리된 뒤에는 0.1~0.2%까지 낮아질 전망이다. 예금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제로금리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 역사상 없던 일이다. 최경환 부총리가 자신의 경제정책을 설명하며 ‘지도에 없는 길’을 간다고 말했다지만 예금자들이야말로 평생 가보지 않던 길을 가게 된 셈이다. 은행에 돈을 넣어두기만 하면 이자를 받아 생활비에 보태던 옛날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돈 굴릴 데가 마땅찮거나 목돈을 들여 창업할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 특히 은퇴자와 고령자들은 자꾸 낮아지는 금리를 보며 생계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정부의 전방위적 경기 활성화 노력에 한국은행도 동참했다는 것 말고는 이번 금리 인하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내수 부양 효과도 크지 않을 것이다. 금리를 인하하면 빚을 내거나 저축을 줄여 소비를 늘렸던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은 지도 꽤 오래됐기 때문이다.

 1999~2002년의 4년이 분수령이었다. 이 기간 중 가계의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평균 5.6%로 외환위기 이전 15년 평균 15.7%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상소비 증가율은 위기 이전 14.9%와 별 차이 없는 12.9%를 유지했다. 이러한 소비와 소득 증가율의 커다란 격차를 메운 것이 가계저축률 급락과 가계부채 급증이었다. 2002년 가계순저축률은 1998년의 21.6%에서 0.4%로 폭락했고, 2002년 가계부채도 가처분소득의 114%에 이르렀다. 대략 이 시점부터 가계부채는 소비 증가보다 오히려 원리금 상환부담으로 소비를 제약하기 시작했다. 이 4년 동안 우리 경제는 저축과 가계부채라는 소비 여력을 말끔히 소진해 버린 것이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도 소비 여력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가계저축은 10년이 넘도록 바닥 수준을 헤매고 있고 가계부채는 위험 수위를 넘어 파국을 향해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4년간의 빚잔치 이후 2003년부터 소비 증가는 가처분소득에 의해서만 결정됐다. 2003~2012년 경상소비 증가율은 가처분소득 증가율 5.7%와 거의 같은 5.3%로 낮아졌고 2008년부터는 가처분소득 증가율과 상관계수가 0.95일 정도로 똑같이 움직이고 있다. 가처분소득 이외의 수단으로 소비를 증가시켜 볼 여지가 거의 없어졌다는 얘기다. 2003년 이후 몇 차례의 금리 인하에도 소비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했던 근본 이유다. 소비와 내수를 살리려면 금리 인하보다 최경환 경제팀이 추구하는 바처럼 천문학적으로 쌓이고 있는 기업 저축이 가계소득으로 흘러갈 통로를 뚫어 경제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 정답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금리 정상화’의 의지를 피력해 왔었다. 내년쯤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우리나라도 금리 인상이 불가피해진다. 그러나 가계부채가 과다한 상황에서 금리 정상화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이런 상황에서 거꾸로 금리를 내렸으니 한국은행의 부담은 더 커졌다고 하겠다.

 금리를 더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선진 각국이 제로금리를 하는데 우리도 국익을 위해 제로금리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나왔다. 국익을 위한 충정은 이해하지만 제로금리를 하는 경제들의 면면을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 결국 달러화·유로화·엔화 단 세 가지 통화뿐 아닌가? 모두 국제화된 통화다. 우리나라 원화는 아직 국제화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제로금리를 하려다간 원화를 가보지 않던 길로 내몰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