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 제안의 진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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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레이건」행정부는 소련에 두개의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하나는 소련과의 합의 문서는 그 종이값도 못할 정도로 무의미한 것이라고 말하는 「레이건」의 얼굴이요, 다른 하나는 미국이 요구하는 「행동원칙」 에 소련이 동의하면 미소대화는 재개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헤이그」국무장관의 얼굴이다.
지금의 객관적인 국제정세로 보면 미국이「레이건」의 주장대로 대소강경일변도의 정책만 고집할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헤이그」의 희망대로 소련이 국제적인 「행동원칙」을 수락하여 다시 대화가 트인다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런 사정을 모를 턱이 없는「브레즈네프」가 소련공산당전당대회에서 미소정상회담과「페르시아」만의 안전보장을 통한 정치적「데탕트」와 전략무기제한협상(SALT)의 계속 및 중거리핵「미사일」의 「유럽」배치의 동결같은 군사적인 「데탕트」를 제안한 데는 다분히 평화공세의 의도가 숨어있는 것 같이 보인다.
「브레즈네프」는 그밖에도 신형핵적재잠수합 배치의 제한, 적재「미사일」의 근대화와 새기종개발의 금지에 관한 교섭을 제안하고 군사기동훈련의 사전통고 합의를 극동지역에도 적용하자고 호소했다.
「브레즈네프」는 말하자면 세계여론 앞에서 「레이건」행정부의 미소대결자세를 역이용하자는 심산으로 짐짓 유연한 자세로 보이는 제안들을 한꺼번에 쏟아낸 것 같다. 물론 미국을 상대로 막후의 사전협의같은 것도 없었다.
「브레즈네프」제안에 접한 「레이건」은 일단은 「유럽」의 동맹국들과 협의를 하면서 「아프가니스탄」및「폴란드」문제가 의제에 오른다면 정상회담에 흥미가 없지는 않다고 암시했다. 미국의 그런 반응에 대해서 소련은 조건부 정상회담은 받아들일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브제즈네프」의 제안, 미국의 반응, 다시 거기대한 소련의 반응은 정석대로라는 인상이다.
물론 「브레즈네프」의 제안, 특히 군축부문의 제안에 과연 긍정적인 의도가 전혀 없다고 볼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확실치가 않다.
소련은 지금 국민총생산(GNP)의 12내지 15%를 국방비로 쓰고 있다. 이것은 소련에 무겁기 짝이없는 부담이고 서방세계에 거액의 빚을 지고있는 어려운 경제형편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폴란드」에 군사개입을 선뜻 감행하지 못하는 이유의 하나도 그런 사태에 따른 경제적인 대가를 감당할 수 없기때문이라는 관측도 일리가 있어보인다.
이같이「브레즈네프」의 제안이 평화공세같기도 하면서 소련의 경제사정을 반영한 긍정적인 일면이 있어보인다는데 서방측의 판단의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소련이 처음부터 미국 반응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이 세계여론상의 득점을 노려 크게 한번「옷는 얼굴」을 지어보인 것이라는 평가가 아직은 우세하기 때문에 그만큼 미국의 반응은 신중한 것이어야 한다.
「브제즈네프」는「페르시아」만의 안전보장에 관한 제안에서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거기 포함시키는데 반대하지 않겠다고, 생색을 내고 있지만「페르시아」만의 불안은 당초부더 소련의「아프가니스탄」침공과 소련해군력의 증강의 결과임을 잊을 수가 없다.
군축제안의 주요한 부분이 되는 「유럽」중거리핵「미사일」배치 문제만 해도 서구를 위협하는 것이 소련의 SS-20, SS-23「미사일」인 것을 생각하면 그 제안은 미국이 중성자탄개발계획을 되살리기로 한데 대한 불안에서 나온 것 같이 보인다.
만약 소련이 이런 해석을 사실의 왜곡이라고 주장한다면 스스로「미사일」증강 및 「엘살바도르」의 좌익 「게릴라」지원을 중지하여 행동으로「성의」를 보이는 것이 일책일 것같다.
우리는 미소간의 긴장고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미소 「데탕트」가 부활되고 「데탕트·무드」가 한반도에까지 확산되어 남북대화 재개의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 그런의미에서「브레즈네프」제안에서 아직은 의심의 여지없이 공정적인 요소를 발견하지 못하는것이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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