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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최고야…"(17)햇콩·동해물로 빚어낸 관동 팔경의 맛-강원도 강릉 「초당두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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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알알이 영근 햇콩과 동해 바닷물이 어울려 두부가 된다.
바닷물로 간을 맞추는 「초당두부」는 강릉의 맛이면서 관동팔경의 맛. 경포대에서 남으로 1㎞, 5백년 노송이 해풍에 휘어지고 파도가 귓전에 철썩이는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산전이 수려해서 인심이 후하고 바닷물이 맑고 고와 두부 맛이 일품인 두부 마을이다. 『음식 맛에 비결을 들라면 우스운 사람이지. 모든 음식이 손끝에 물 적시는 안사람들 정성에 달려있는 법이야.』
60년을 초당두부의 맛을 지키며 살아 온 이간난 할머니(80)는 눈 같은 백발과 쪼글쪼글한 주름살이 두부 뜨는데 정신 쓴 탓이라고 한다.
두부 뜨는 부엌문을 열자 배릿한 콩 내음이 물씬 풍긴다. 대형 가마솥에서 뿜어 오르는 수증기가 짙은 안개를 편 듯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어른거린다.
맷돌을 돌리는 이 할머니의 맘 며느리 김춘봉씨(45)의 이마에선 구슬 같은 땀방울이 쉴새없이 흐른다. 정하게 씻어 밤새 물에 불린 두부콩을 한줌한줌 집어넣을 때마다 연두빛 콩 물이 졸졸 함지박에 흘러내린다.
콩 한말 가는데 2시간. 몸살이 날만큼 어깨가 뻐근해지는 고된 작업이다. 마을에서는 벌써 여러 집이 전기맷돌을 들여놓았지만 이 할머니만은 세월에 닳아 반질반질한 쑥 맷돌을 아직도 고집하고 있다.
맷돌에 간 콩 물은 삼베 체에 부어 더운물을 살살 뿌리며 흔들면 비지 찌꺼기만 남고 유백의 콩 즙이 걸러진다.
펄펄 끓는 물솥에 콩 즙을 부어넣고 장작불로 또 2시간을 끓인다.
『두부는 간이 생명이야. 간이 덜 들면 맛을 버리고 너무 세면 색을 버리지.』
초당두부의 별미가 바로 간수가 아닌 동해 바닷물을 끓여 간을 맞추는데 있다고 이 할머니는 말한다. 화력의 세기며 끓이는 시간이며 물의 양이며 모두가 도량형의 수치로는 도무지 어림할 수 없는 60년 경륜의 눈어림과 손짐작으로 이루어진다.
간간이 간이 배어들면서 말랑말랑 응고되면 바로 초당 순두부. 이때쯤이면 시내에서 몰려든 술꾼들이 모락모락 김이 나는 순두부에 양념 간장을 풀어 휘휘 저어 후룩후룩 마시면서 지난밤 폭음에 쓰린 속을 달랜다.
경포 호를 보고 초당두부를 지나치면 멋을 알고 맛을 잃은 격. 때문에 관광 철이면 자가용 행렬이 동구 밖 노송나무 있는 데까지 줄을 잇는다.
따끈따끈한 순두부 한 뚝배기에 시원한 동치미와 잘 익은 총각김치를 곁들여 1인분 3백원. 먹새 좋은 손님이 아쉬운 듯 하면 한 뚝배기가 덤으로 올려진다.
이 순 두부를 사방1m 크기의 모판에 부어 두어 시간 은근히 물기를 빼면 토실토실하게 응고되어 초당두부가 된다.
새벽 4시에 일손이 시작되면 오전 10시에야 끝난다. 콩 한말이면 두부 한판(20모). 초당두부 한 모 크기는 공장에서 내는 두부의 두배. 온 식구가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 하루 세 판을 떠낸다.
한판 값은 9천원 콩 한말 6천원, 땔감 세금 따위를 빼면 2천5백원이 남는다. 이 마을에서 두부를 만드는 곳은 2백50가구 중 1백여 가구. 가구 당한달 평균 20여만원의 순 수입을 올린다.
초당두부가 한때 불량식품으로 몰렸다. 제조환경이 불결하고 간 맞추는데 간수대신 바닷물을 쓴다는 게 시비의 초점이었다. 시내에서 두부공장을 갖고있는 업자들의 집단진정 등 압력이 가해졌다.
30년을 초당두부 만들기로 살아온 최종국씨(58)는 『바닷물을 2시간씩 펄펄 끓이는데 무슨 균이 있겠느냐』며 『맛과 질에 자신 없는 공장업자들의 농간』이라고 항변했다.
『어데 라고 말은 못해도 내 집에서 나오는 두부는 횟가루도 안 들고 방부제도 안 들어가. 이 할미가 늙어서 추해 보일지 몰라도 일어나면 바로 이 닦고 세수하고 참빗으로 머리 빗고…내 두부에 머리한칼 들어가면 그날은 문닫을 지언정.』
불결 시비가 났을때 이 할머니는 백년전통이 끊기는게 서러워 집에서 먹더라도 쉬지 않고 두부를 떴다고 한다.
이 같은 시비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계속될 것 같다. 초당동장 정정시씨(46)는 『초당동을 하루빨리 토속음식 촌으로 지정하고 제조환경 개선을 당국에서 지원, 강릉의 맛을 보존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힘준다.
무미가 바로 초당두부의 맛. 양념을 치면 양념 맛을 살리고 김치에 싸먹으면 김치 맛 을 돋보인다. 냉이 달래와 함께 된장 찌개에 들어가면 찌개 맛을 살려 아내를 점수 따게 하는 맛, 그것이 초당두부의 맛이요, 진짜 두부 맛인 것이다. 【강릉=김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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