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프란치스코 교황 "죄 지은 형제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마지막 날인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며 한반도와 대한민국을 향해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던졌다. 성당으로 들어선 교황은 앞자리에 앉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먼저 안았다.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축복했다. 할머니들은 눈물을 흘렸다. 가슴 아픈 대한민국의 현대사, 그 와중에 상처 입은 이들을 교황은 먼저 어루만졌다.

 강단에 오른 교황은 미사에서 “하느님께 평화와 화해의 은총을 간구한다. 이 기도는 한반도 안에서 하나의 특별한 공명(共鳴)을 불러일으킨다”고 운을 뗀 뒤 ‘용서’를 먼저 주문했다. “베드로가 주님께 물었다.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 용서해야 한다(마태오복음 18장21~22절).’ 이 말씀은 예수님 메시지의 깊은 핵심을 드러낸다.”

 교황은 남북 관계를 형제에 빗댔다. 이어서 ‘주님의 기도’를 인용하며 “만약 우리가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어떻게 평화와 화해를 위하여 정직한 기도를 바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무런 남김없이 용서하라는 명령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전적으로 근원적인 무언가를 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신다”며 용서야말로 화해에 이르는 문이라고 했다.

 성당에는 침묵이 흘렀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대한민국의 십자가’를 피력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분열의 간격을 메운다.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 형제애에 대한 본래적인 유대관계를 다시 세운다.” 좌중을 둘러보던 교황은 “십자가의 힘을 믿으라!”고 요청했다. 십자가의 힘, 그게 화해를 불러오는 은총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메시지는 강력했다. ‘분열과 대립 ’ 대신 ‘용서와 화해의 앵글’로 바꾸라는 주문이었다. 교황은 “이게 바로 제가 한국 방문을 마치며 남기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기도를 제안했다. “이제 대화하고, 만나고, 차이점들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기회들이 샘솟듯 생겨나게끔 우리 모두 기도하자. 부디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화합과 평화를 이루도록 진심으로 기원한다.”

 미사를 마친 뒤에 염수정 추기경이 제의실에서 교황에게 가시면류관을 선물했다. 1953년에 설치됐던 휴전선 철조망으로 만든 면류관이었다. 천주교 관계자는 “교황께서 그 선물을 안고 차에 타셨다. ‘철조망 가시면류관’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바티칸까지 안고 가시는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한항공편으로 로마로 떠났다. 교황은 비행기가 서울공항을 이륙한 뒤 대한항공 기장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다시 한번 기도 드린다”며 “여러분 모두에게 신의 축복을 기원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백성호·김호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