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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이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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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불교 조계종의 종정으로 해인사 백련암 성철방장이 어제 취임했다. 8년의 「장좌불와」 수행, 방문객에게 3천배의 예불을 요구하는 등의 일화로 「잡인」의 접근을 따돌린다고 해서 벌써부터 이름난 이 선승은 추대식 법어에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하고 알쏭달쏭한 선지를 놓아 세인을 어리둥절케 만들었다.
대체 법어란 무엇이며, 성철방장의 이 법어는 무슨 뜻의 말인가 하는 의문이 뭉게뭉게 일어난다.
법어는 말 그대로 「이법에 따르는 말」 곧 불법을 말하며 혹은 「법문에 관한 교설」을 뜻한다. 선가에 있어서는 여러 조사들의 가르침을 모두 법어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불법은 석전에 의해 8만4천의 법문으로 설하여지고 장강대하의 삼장으로 결집되었으나 그 본지를 그것으로 반드시 확집한 것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 선가의 얘기다.
그래서 『직지인심 견성성불』의 비의가 설해지는가 하면 「삼처전심」의 묘리가 거론되기도 한다.
불법은 문자나 언어를 내세우지 않고 오직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고 법으로 법을 인가하여 대대로 이어 전할뿐이라는 것이다. 「선종무문관」이나 「벽엄록」 ,「종용록」의 모든 요의가 이것을 이야기한다.
가령 조주가 『개(구자)도 불성이 있는가』 하는 물음에『없다(무)』 라고 대답한 것도 「불법」의 소재에 대한 「법어」라 할 수 있다.
우리 선가에서도 오도를 위한 선문답이 적지 않았고 사찰의 개창이나 입원 때에 상당법어를 했다.
고려의 태고 보우국사는 시무제거사 법어」에서 이같이 말한다.
『…마땅히 조주가 무라 한 것을 삼상하기를 마치 늙은 쥐가 쇠뿔로 들어가둣 하면 문득 막다른 곳에 이르게 되리니 영리한 이는 이에 활연 칠통을 깨뜨리고 조주를 붙잡아 쥐어 천하 사람의 혓바닥을 의심하지 않으리라』 한다.
그 진리 자체를 깨달으면 『부처님의 일대장서가 얼마나 부질없은 말이며 1천7백개의 공안이 무슨 잠꼬대이며, 임제스님의 갈(할)과 덕산스님의 봉(방)이 무슨 어린애 장난인가』 하는 태고의 법어조차 나오게 된다.
이런 차원에서 이야기되는 것이 법어이니 세속사람들이 형식윤리 만으로 사변의 꼬리를 이어보고 혹 언어의 뜻을 해석해 보려 해도 쉽사리 사량될 리 없다. 바로 「언어도단」의 경지다. 그러니 성철종정의 법어를 『깨닫고 나면 분별하지 않는다. 있는 것은 그대로 있는 것이다. 현실이 곧 진리인 것이다』 라는 식으로 해석하려 들면 이미 그 본지는 잡히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그는 새 종단 출범에 맞추어 불지를 짧고 하게 다시 밝히고 있을 따름이니 우매한 범부로서 어찌 그 뜻을 쉽사리 알아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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