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이충희와 신동파 감독 농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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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유니폼」하나만을 덜렁든 이충희(23·고려대)가 훈련에 여념이 없는 신동파씨(37·태평양화학 감독)를 체육관으로 찾아오자 순간 두 사람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긴장(?)한 듯 잠시 말을 잊는다. 한국 남자 농구의「슛」장이 이충희 선수와 한때「아시아」의 득점기계로 불렸던 신동파씨는 이름만으르도 너무 유명하다.
1m82cm의 농구에선 비교적 단신인 이 선수는 아무각도에서든지 몸을 뒤로 약간 젖히며 마구 쏴대는 소나기「슛」으로 농구「팬」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반면에 1m89cm로 큰 키의 신씨는 깨끗한 중거리「슛」으로 한국은 물론「필리핀」에서 더욱 이름을 날렸다.
신=『충희에겐「슛」에 관한 한 할말이 없어.「슛·타임」이 빠르고 너무나 정확해서…』 이=『저는 송도고 1학년 땐 매일 점심을 먹은 후 대략3시간동안 1천개의「슛」을 2년간 계속 던졌어요. 3학년이 되니까 눈을 감아도「링」이 보이는 것 같더군요.』천재는 90%의 노력과 10%의 재질로 만들어진다는 얘기가 있다.「슛」장이 이충희는 우연히 탄생한 것은 아니다. 이 점은 신동파씨도 마찬가지였다.
신= 『나는 하루에 7백개 정도 던졌어. 특히 휘문고에 그땐 체육관이 없어 운동장에서 달밤에도「볼」을 던졌지』신씨는 자유 투를 연속 98개·「점프·슛」을 연속 90개를 내리 성공시킨 기록이 있는 반면, 이 선수는 자유투 1백7개·「점프·슛」90개를 연속 꽂아 넣은 기록이 있다면서 처음으로 환하게 웃는다.
한국이 제5회「아시아」남자 선수권대회(69년·「방콕」)에서 처음 우승할 때 신씨는 결승전「필리핀」과의 경기에서 혼자 50점을 기록했다. 이 득점은 아직까지 국제 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올린 최고점수로 남아있다.
이 선수는 국내대회에서 세차례 50점을「마크」한 적이 있으나 국제대회에선 부진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지난해 대표「팀」미국 원정에서 상대가 워낙 강「팀」이긴 했지만 어마어마한 기량차로 농구할 마음이 싹없어지더군요. 키가 작은 것이「핸디캡」이지만 특히 2월부터 현대「팀」에 입단하면「어시스트」에 주력할 작정입니다』
신= 『대 선수로 크려면 어려운 고비가 반드시 있는데「슈터」는 이기적이 되기 쉽지. 농구는 단체경기라는 걸 잊지 말고 동료를 도와주어야 해』「골·게터」끼리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지면서 서로 형제처럼 곧 친숙해졌다. <이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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