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목 껍질 씹으며 허기 달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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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칠흑같은 갱속에 갇혀 허기와 불안에 떨며 1백15시간만에 극적으로 구출된 이옥철씨는 생사의 갈림길을 헤맨 순간 순간을 용기와 신념으로 이겨낸 인간승리의 한 실례를 보여주었다.

<사고 순간>
채탄후산부인 이씨는 8편 갱 3「크로스」에서 굴진 작업을 위해 갱목을 운반하던 중 막장쪽에서「쿵」하는 소리와 함께 세찬 바람이 휘몰아 닥치고「비닐」조각들이 날아들어 순간적으로 사고를 긱감했다.
쏟아진 죽탄은 4번「크로스」90m 입구 12m를 메웠다.

<매몰>
칠흑같은 어둠에 갇힌 이씨는 고참 간부들에게서 들은 경험담, 귀가 따갑도록 들은 안전수칙을 곰곰 되새기며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우선 휴대용 안전등을 껐다. 10시간은 계속 켤 수있는 것이었으나 고참 간부들의 말대로 구조작업이 늦어질 것에 대비해 전지를 아끼기로 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입갱 때 받은「아스피린」알 크기의 포도당 식염 15알이 있었고 밑바닥을 더듬어 보니 지하수가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포도당 식염은 땀을 많이 흘리는 채탄부들이 식염 공급을 위해 갖고 다니는 비상식품.
입갱 때 시계를 탈의실에 풀어놓아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할 수 없었으나 이씨는 포도당 식염 알을 서녀시간에 1알씩 먹으려 작정했다. 그렇게 되면 3∼4일은 견딜 수 있고 그사이 구조대가 오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첫날과 그 다음날쯤으로 어림될 때까지 이씨는 스스로 살아날 길을 찾아야겠다고 갱 입구를 막고 있는 죽탄을 치우는 작업을 했다. 다행히 갱내 온도는 20도 정도였고 산소공급용「파이프」는 계속 가동 중이었다.
갱 귀퉁이에서 찾아낸 도끼와 괭이로 작업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기운이 조금 남아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의 작업은 가늠했다. 지치면 눈도 잠시 붙였다. 3, 4일쯤이 지나갔을까.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포도당 식염도 바닥이 났고 동료들이 까먹고 버린 계란껍질도 다 찾아 씹어먹었으나 허기를 참을 수 없었다.
평소 위장이 나빠 식사를 제대로 못 했고 입갱 직전인 5일 밤에도 호빵 2개와 사과 1개만을 끼니로 때웠기 때문에 이제는 위액이 더 이상 삭일 음식물이 있을리 없었다.
뱃가죽이 달라붙는 듯한 고통과 함께 졸음의 공포가 엄습했다.
『잠들면 죽는다』는 선배들의 충고가 생각났다. 잠을 쫓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갱목 껍질을 벗겨 씹었고, 노래도 부르고, 체조도 했다. 처자식의 이름을 되뇌 보기도 했다.
넓은 갱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몇 차례나 죽탄을 파내기도 했으나 탈출구를 찾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는데 밖에서「레일」위를 구르는 탄 차의 소리가 점차 가까이 들려왔다. 구조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때부터 이 씨는『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구조>
갱속「레일」옆에 설치된 산소공급을 2「인치」짜리 쇠「파이프」를 찾아 돌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사고 때면 으례 이렇게 해서 구조를 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몇 시간을 두드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도 지치니 공포도 불안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살아야한다』는 생각과 구조되는 장면이 환상으로 자주 어른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의식이 몽롱해지며 잠시 졸았다 싶었는데 쇠 「파이프」를 두드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이씨는 물이 깨져라하고 쇠「파이프」를 마구 두들겨 댔다.
한참 지나 밖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쇠「파이프」가 안으로 박혔고『조금만 더 참아』하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깨지 듯 아프고 팔다리에 경련이 일어났으나 힘껏 소리쳤다. 『나는 살아있다』.

<이옥철씨>
지난해 3월 중순 은성 광업소 채탄부로 취업한 광부 초년생. 그러나 광산촌인 문경군 가은읍 왕능리 일대에서 이장으로 10년간 일해왔고 광산촌 주민들을 상대로 채소·어물 등을 팔아오며 접촉해 왔기 때문에 갱내 사고에 대한 예비지식을 많이 갖고 있다.
불과 10개월 된 광부로 고참들도 어려운 침착과 인내를 보였다는데 광업소 측도 놀라운 표정. 월23만원을 받아 부인 1남1녀와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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