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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닥터] 인공관절로 홀로서기 돕는 ‘무르팍 도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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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호 22면

경희대병원 정형외과 배대경 교수(68)는 지난 8일 태국 푸껫 행(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9~11일에 열린 아시아태평양무릎관절학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인공관절 수술과 관련된 세미나에서 좌장을 맡았다. 학회가 끝난 뒤 임원회의에 참석, 2018년 학회를 서울로 유치했다.

<26> 경희대병원 정형외과 배대경 교수

배 교수는 10년 전만 해도 지금쯤 집에서 편안하게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학생 때 피아니스트가 꿈이어서 하루 종일 피아노와 붙어 지냈지만 ‘현실의 벽’ 탓에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대신 의사로서의 고뇌와 피로를 음악으로 풀었다.

정년 이후엔 음악과 더 친해지려고 했지만 환자들은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전국의 병원에서 손을 놓은 무릎 관절염 환자들이 배 교수에게 몰려와 수술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2012년 병원에서 정년퇴직했지만 환자를 떠날 수가 없었고 병원도 배 교수를 붙잡았다.

배 교수는 대신 수술실에서 베토벤·차이코프스키·브람스·라흐마니노프 등의 음악을 틀어놓고 메스를 든다. 그는 정년퇴직 후에도 한 해 평균 5000명의 환자를 보고 이 가운데 350~400명을 수술한다. 그의 환자 가운데는 여러 병원을 전전한 노인 환자가 많다. 수술 환자의 15%가 80대, 5%가 90대 노인이다.

해외학회 초청도 이어져 매년 7∼8번은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5월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정형외과기술학회, 7월엔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국제인공관절태평양학회에 초청 받아 특강을 하거나 세미나 좌장을 맡아 중견의사들을 이끌었다.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대한정형외과학회·아시아인공관절학회·정형외과컴퓨터수술학회 등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올 상반기에만 국제학술지에 2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하반기에 3편을 더 발표할 예정이다.

배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수석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정형외과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하지만 모교엔 ‘교수 자리’가 없어 경희대병원으로 향했다.

배 교수는 1981년 미국 위스콘신의대 성(聖) 프란시스 병원에 연수를 가서 ‘무릎의 세계’에 눈을 떴다. 그곳 교수들은 성실한 배 교수에 반해서 병원에 남을 것을 제안했다. 당시엔 서울대·연세대 등 명문의대를 나온 인재들이 미국으로 이민 가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 배 교수의 동기만 해도 수석인 자신을 빼고 2~5등이 모두 미국에서 정착했다. 그러나 배 교수의 내면에서 “내가 미국에 온 것은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이지 호사스런 삶을 위해서가 아니다. 조국의 환자를 위해 되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울려 펴졌다. 위스콘신의대의 스승들은 배 교수가 이런 생각을 전하자 적극 도와줬다. 배 교수가 1년 동안 미국 메이요 클리닉·클리블랜드 클리닉·영국 왕립국가정형외과병원·독일 엔도 클리닉 등 세계 10대 병원에서 연수하도록 주선한 것이다. 배 교수가 ‘강호의 고수’들을 섭렵하고 귀국할 때쯤엔 이미 ‘무르팍 도사’가 돼 있었다.

우리나라는 당시 무릎에 이상이 생기면 진통제를 먹고 참아야 했던 시기였다. 그는 인공관절 수술법의 전도사가 돼 여러 병원을 돌며 치료법에 대해 강의했다.

배 교수의 최대 장점으론 30여 년 동안 환자를 보며 쌓인 경륜으로, 환자 별로 다양한 치료를 하는 것이다. 환자의 무릎 연골을 다듬어 통증을 줄이는 관절경 수술, 다리뼈를 자른 뒤 교정해 양 무릎의 무게 균형을 맞추는 절골술, 인공관절로 바꾸는 관절치환술 등을 적절히 선택해 시술한다.

수술법과 기구를 향상시키는 데도 열심이다. 그는 2006년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수술하는 ‘인공관절 자동항법장치’를 개발했다. 이 장치를 인공관절· 절골술 등에 활용해 치료율을 높이고 있다. 2006년엔 무릎관절 수술에 쓰는 ‘교정절골술 기구’의 국산화에 성공해 현재는 국산 기구로 수술하고 있다. 그는 이 기구 제작과 관련된 모든 권리를 중소기업에 넘겼다.

“수술은 정성에 비례합니다. 환자마다 무릎의 모양·크기 등 해부학적 구조가 다 다르므로 공장에서 만든 인공관절이 모든 환자에게 딱 맞을 수가 없어요. 이를 정성껏 깎고 다듬어서 환자에게 더 잘 맞추려고 노력하면 환자의 만족도가 좋아지겠지요. 환자에게 혼신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에서 의술은 곧 예술입니다.”

이성주 코메디닷컴 대표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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