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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진리·재물·쾌락·구원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삶은 낭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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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호 24면

마우리아 제국에서 사용된 은화.

인도는 동양이라기보다는 ‘동양 속의 서양’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나라다. 지리적으로만 동양이다. 인종이나 언어의 계통으로 봤을 때 인도는 서양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그래서 인도를 배경으로 발생한 불교를 서양 철학·사상사의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어쩌면 우리가 아는 선불교는 ‘동양적인’ 도교에 가깝지만, 석가모니의 사상은 과학에 가깝지 않을까.)

<36> 카우틸리아 『아르타샤스트라』

지난 몇 백 년 동안, 적어도 19세기 이래 서양이 세계를 지배했다.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다’라고 했을 때 중국 못지 않게 주목해야 할 나라는 인도다. 인도의 사상적·정신적 구조가 서구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친연성(親緣性·affinity)이 높으면 그만큼 수용·학습의 속도가 빠르고도 손쉽다. 인도가 일단 본격적으로 이륙(take-off)하면 그 속도는 어지럼증을 느끼게 할지 모른다.

이런 배경에서 특히 미국의 인도계는 경제·과학·교육 분야에서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인도 경제는 아직,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지만 말이다.

『아르타샤스트라』는 인도라는 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어제의 영광’과 ‘오늘의 저력’‘내일의 괴력’을 상징하는 책이다. 인류 사상사·학술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아르타샤스트라’는 ‘물질적 이익의 과학’ ‘왕의 이익을 위한 안내서’ ‘정체(政體)의 과학’‘실리론’(實利論)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아르타샤스트라』의 영문판(옥스퍼드대 주석판·2013) 표지.

인류 최초로 국제정치학 본격 접근
이 책은 정치·경제·외교·행정·국방·첩보·조직·세금·분배 등 국가·정부를 운영하는 다루는 데 필요한 모든 영역을 다뤘다. 사회 통합에 대한 내용도 있는데, 중점적으로 다룬 분야는 외교와 전쟁이다. 인류 최초의 본격적인 국제정치학 문헌이라고 할만하다.

서양에서 한참 뒤에 나온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나 공리주의 사상이 『아르타샤스트라』에 이미 다 나와 있다. 요즘의 용어를 쓴다면 진보주의적인 면모도 있다. 카우틸리아는 현실주의의 입장에서 진보주의를 흡수했다.

『아르타샤스트라』에는 시원적 형태의 복지국가론이 담겨 있다. 카우틸리아는 빈자(貧者)·노예·여성 등 사회적 약자 문제도 다뤘다. 특히 가뭄 때에는 부의 재분배를 실시해야 한다고 카우틸리아는 주장했다.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가문이 아니라 그의 행위다.”라며 실력주의(meritocracy)를 주창하기도 했다.

저자인 카우틸리아(기원전 370~283년)를 서구인들은 ‘인도의 마키아벨리’라고도 부르지만, 역사의 선후 관계를 따진다면 마키아벨리를 ‘이탈리아의 카우틸리아’라고 하는 게 맞다. 『아르타샤스트라』에는 유가(儒家)와 법가(法家)의 종합이 들어있다는 평가도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쓴 이 책은 15권으로 구성됐는데, 한동안 사라졌다가 1905년에 다시 발견됐다.

카우틸리아는 총리이자 스승이자 책사로서 찬드라굽타(기원전 350~283년께)가 마우리아 제국(기원전 322~185년)의 초대 황제로 등극할 수 있는 길을 텄다.(이전 왕조의 국왕이 그를 무시했기에 앙심을 품고 ‘역성혁명’에 가담했다는 설도 있다.) 건국 이후에도 제국의 팽창을 주도했다. 한마디로 『아르타샤스트라』는 효험이 검증된 책이다.

『아르타샤스트라』 전체를 관통하는 관념은 정치현실주의(realpolitik)와 실용주의다. 속이는 것은 기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독 없는 뱀은 독이 있는 척해야 할 것이다.” 또 카우틸리아는 통치자가 목적 달성을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어떤 도덕적인 제한도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적국에 많은 수의 스파이를 보내 정보 수집암살 등을 감행할 것을 주장했다. 또 『아르타샤스트라』에는 태자가 황제의 자리를 자리를 너무 일찍 넘보지는 않는지 황제가 감시하는 법뿐만 아니라, 태자가 아버지인 황제의 지나친 간섭을 저지하고 대처하는 법까지 나와 있다.

정치와 행정에 대해 그가 설파한 내용은 지금 읽어도 뜨끔하다.

“창부(娼婦)는 가난한 사내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며, 새들은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에 둥지를 틀지 아니하며, 시민은 절대로 약한 정부를 지지하는 법이 없다.”
-“신하의 부정을 감지하는 것은, 물속의 물고기가 물을 얼마나 마시는지 알아내는 것보다 더 어렵다.”

카우틸리아의 저작에는 인생살이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도 많다. 담긴 주장이 지극히 현대적이라는 게 놀랍다. 마치 이번 주에 출시된 따끈따끈한 자기계발서 같기도 하다. (경고: 지나치게 적나라한 현실주의가 마음이 따뜻한 분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음)

요즘으로 치면 경제·정치학과 ‘폴리페서’
우선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정 생활과 관련해 카우틸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양처(良妻)는 아침에 남편을 어머니처럼 돌보고, 낮에는 누나·여동생처럼 사랑하며, 밤에는 창부(娼婦)처럼 즐겁게 한다.”
“자식은, 5살때까지는 애인처럼 대하라. 그 다음 5년은 야단치라. 자식이 16살이 될 무렵에는 친구로 대하라. 장성한 자식은 최고의 친구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식구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일이다. 일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스스로에게 세가지 질문을 하라. ‘나는 왜 이 일을 하는 걸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이 일은 성공할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만족스러운 답을 얻었을 때에만 일에 착수하라.”
“뭔가 착수한 일에 대해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포기하지도 말라. 정성을 다해 일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
“교육은 제일 좋은 친구다. 교육 받은 사람은 모든 곳에서 존경 받는다. 교육은 아름다운 용모나 젊음보다 강하다.”

우정에 대해서도 현실주의적인 기조가 유지된다.
“신분이 더 높거나 낮은 사람과는 친구가 되지 말라. 그들은 내게 행복을 주지 않는다.”
“모든 우정의 이면에는 얼마간 사사로운 이익이 자리잡고 있다. 사리(私利) 없는 우정은 없다. 이게 쓰라린 진리다.”

카우틸이아의 종교관에서도 시대를 앞선 진보성이 발견된다.
“우상에는 신(神)이 실재하지 않는다. 여러분의 감정이 여러분의 신이다. 영혼이 여러분의 신전이다.”

그렇다면 그의 인생 총론은? 역시 현실과 이상을 깔끔하게 몇 가지 개념으로 종합했다. 카우틸리아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인생에서 4가지를 얻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진리·재물·쾌락·구원이다. 이 중 한가지도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허비한 것이다.”

카우틸리아는 요즘으로 치면 ‘폴리페서(polifessor)’였다. 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가르쳤다. 그는 조로아스터교 신자였거나 적어도 조로아스터교에 대한 지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의 자이나교의 관행대로 스스로 굶어 죽었거나 궁중 음모에 희생된 것으로 추측된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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