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황의 메시지, 이 땅에 실천하려면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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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일정 중 가장 큰 행사인 시복 미사가 16일 성대히 치러졌다. 행사가 진행된 광화문 일대는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찼다. 교황의 강론에 귀 기울이며 기도하는 가톨릭 신자들만의 모임이 아니었다. 슬픔과 비통을 치유받으려는 이, 풀리지 않는 억울함과 고통을 호소하려는 이도 많았다. 특히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이 교황에게 직접 아픔을 호소한 것은 정상적인 절차로선 도저히 해결 전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 아닌가 싶다. 교황의 축복에 감동하면서도 내부의 갈등과 고통을 좀처럼 풀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자정 능력의 부재를 실감케 한 현장이었다.

 교황은 강론에서 평화, 화합, 정의, 인간가치 등을 강조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에 대해선 매우 강한 표현을 썼다. “막대한 부요(富饒)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 안에 살고 있는 우리”라는 표현이 그렇다. 이미 전날의 강론에선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빈다”며 “우리 가운데 있는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과 힘없는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이제 우리에겐 교황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이 남았다. 약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달래주는 일, 우리 사회에 평화와 화해가 자리 잡도록 하는 일 말이다. 물론 교황이 며칠 머물렀다고 뿌리 깊은 갈등과 상처가 단숨에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교황을 전지전능한 구원의 메시아로 보는 것도 적절치 않다. 우리의 문제는 결국 우리가 해결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지도층과 정치권이 이 점을 통렬하게 인식해야 한다. 당장의 정략적 구도에서 벗어나 고통받고 있는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국민 개개인 역시 저마다의 위치에서 본분을 충실히 다할 필요가 있다. 교황은 그런 노력에 대해 조언하고, 격려하고, 축복해 주는 존재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교황에게 크게 의지하는 셈이다.

 문제는 일각에서 교황 방한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점이다. 교황의 방한과 말씀이 누구에게 유리하다느니, 누구에게 불리하다느니 하며 정치적 계산을 하는 행위야말로 교황의 메시지에 어긋난다. 교황은 어느 한 편만 들어주는 분이 아니다. ‘나만을 위한 교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래 위, 좌우가 모두 교황의 관심사다. 사적이고 편향적인 이익의 잣대로 교황의 뜻을 해석하려는 것은 그야말로 견강부회(牽强附會)요, 아전인수(我田引水)다. 역사적인 교황 방한의 의미를 이 땅에 살리려면 모두들 자성해 공동체적 가치 실현에 동참해야 한다. 그것이 교황이 촉구한 ‘연대의 세계화’로 나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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