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쓰고 그리고…|첫 구필 작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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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불구의 몸을 예술에의 의지로 승화시킨 입의 예술가 김준연씨(29)의 첫 구필(구필)작품전이 8일 세종문화회관 제2전시실에서 열렸다
전시된 작품은『추계』『산고수장』등 동양화 40점과『인생예찬』등 서예 16점. 전신마비의 한 인간이 의지와 영혼을 불태워 육체를 초월한 각고의 결실들이다. 김씨가 군에서 창고작업 중 덜어져 목뼈가 부러져 전신마비의 중상을 입은 뒤 79년1월 국립 원호병원에서 붓을 입에 물면서 2년간에 걸쳐 제작한 작품 중에서 간추린 것이다.
부인 전경분씨와 함께「휠·체어」를 타고 자신의 작품 전시장을 찾은 그는『주님의 은혜와 주위의 보살핌이 오늘의 보람을 안겨 주었다』며 눈물을 감추려하지 않았다.
그동안 김씨의 그림을 지도해온 숙대 이인실 교수는『영혼의 생명력이 약동하는 독특한 경지를 찾아가고 있다』고 평하고『마음대로「스케치」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이같은 수준 작품을 만든 것은 그의 정열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가 입으로 그림을 그리겠다고 결심한 것은 병원에 있을 때「다이제스트」지에 실린 외국인의 예에서「힌트」를 얻고 나서였다.
인천시 그의「아파트」가 화실이자 거실. 그는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침대 위에 엎드려 지낸다.
용변은 1주일에 한번 관장으로 해결하고 소변은「호스」로 받아낸다. 엎드려 식사를 하니 많이 먹지도 못한다.
『하루에 몇 시간씩 입에다 붓을 물고 있으니 입이 아파요.』부인 전씨는 그가 작품을 그리는 동안 담배를 붙여 주고 붓을 바꾸어 물려준다. 24시간 한시도 곁을 떠날 수 없는 그의 분신이다.『걸작을 남기겠다는 욕심보다 불행한 사람에게 옹기를 주는게 목적입니다』김씨는 이제 유일하게 움직이는 입술마저 굳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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