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왔던 서울-변종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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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이 퍽 아름다운 고장이었겠습니다』하는 말은 서울을 처음 찾아온 외국인 친구들로부터 여러번 들어본 말이다.
이 말은 옛적에는 서울이 퍽 아름다웠겠습니다 하는 말이고 지금은 그 옛 모습을 더듬어 볼 수는 있어도 꼭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느낌을 든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전란을 겪고 몽땅 파괴되었던 서울을 이야기해주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언젠가 한국동란에 참전했던 우방 용사들이 다시 한국을 잣아 그 잿더미에서 이렇게 발전한 것은 기적이라고 칭송하던 말을 기억한다.
잿더미에서 보면 지금이 기적적인 발전이겠으나 원래 서울의 <털>을 볼 수 있는 눈에는 지금의 서울은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던 한 외국 친구는 그 엄청난 청제「아치」에 놀라면서 삼각산이 아깝다고 말했다.「택시」운전사가 차창 밖으로 내뱉는 가래침으로 얼굴에 세례를 받은 그 친구는「택시」를 탈 때마다 손수건을 꺼내던 일이 기억난다.
들이박고, 밀치고 , 발등을 밟아도 이것이 조금도 미안하지 않는 곳이 서울이다.
어쩌다 거리에서 마구 밀치고 지나가는 이가 있을 때면 나는 그 사람이 무역하는 사무에 쫓겨서 저렇거니 생각하게 되었다.
매연과 먼지로 구토증을 느낄 때면 나는 내 간이 나빠져서 그렇거니 하고 생각한다.
시청 앞을 지날 때마다 만나는 비둘기 떼도 아름답기는커녕 측은하고 불쌍하게만 느껴진다.
살아 있어서 용하다는 생각뿐이다.
갓 옮겨다 심은 것 같은 야윈 은행나무 가로수에다 아이 놈이 오줌을 싸고 있다.
가게문 앞에서는 어미가 요강을 씻고는 나무 밑에 씻은 물을 쏟아 버린다.
그 삐삐 마른 은행나무가 올 겨울을 온전히 넘기기가 어려울 것이다.
「버스」안에서 고기 씹듯 껌을 씹던 아낙네가 한 개를 옆자리의 사내 입에 쏙 넣어준다.
맞은편 자리의 학생이이 무표정하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는 것인지-.
하오. 노도와 같이 사람과 사람들이 좁은 보도를 꽉 메우고 밀린다.
소음과 「가스」와 사람이 범벅이 되어 밀려가고 있다.
그 속에 책가방을 등에 맨 어린 소년들이 끼여가고 있다.
두 소년은 손을 꼭 잡고 어른들과 어른들 사이에서 밀려가고 있다.
책가방에는 순한 강아지 사진 한장씩이 눈에 뛴다.
갑자기 두 소년은 합창을 하는 것이다.
어른들 등 위쪽을 쳐다보며 노래를 하는 것이다.
무슨 노래인지 신나게 소리를 지른다.
오늘 학교에서 배운 노랜지.
그 무서운 소음 속에서도 이따금 그 맑은 노래 소리는 내 귀에 들려온다.
이 파란 목소리.
나도 신나게 그 뒤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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