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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을 '셀프개혁' 하겠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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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정치국제부문 기자

김흥석(준장) 육군 법무실장이 11일 내부 전산망에 올린 글은 부적절했다. 글을 올린 시점도, 내용도 그렇다.

 그는 28사단 윤모 일병 구타 사망사건에 “군 검찰의 수사 자체가 오해와 불신으로 매도되고 있어 매우 참담한 심정”이라고 적었다. “잘못된 여론에 밀렸다”며 최초 28사단 검찰단의 판단이 ‘법적 양심’에 기초한 ‘완벽한 공소 제기’라 주장했다. “당시 작성된 공소장을 보고 검찰관의 노고와 열정에 감탄했고,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지난 8일 국방부 감찰단은 28사단 검찰단의 수사 결과를 뒤집고 가해자들의 주 범죄사실을 ‘상해치사’에서 ‘살인’으로 바꿨다. 이 결론을 그가 다시 뒤집은 셈이다.

 지난 10일 군 당국은 3군사령부 검찰단을 중심으로 이 사건을 보강 수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군 관계자는 ‘사실상의 재수사’라고 밝혔다. 과연 새 수사팀이 김 실장의 글을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육군 검찰총장 격인 김 실장이 ‘부실 수사’였던 초기 수사를 합리화해 주는 상황에서 말이다.

 더 큰 걱정은 군의 미래다. 김 실장의 글에 군이 ‘셀프개혁’에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가 나와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다.

 하나는 공고한 내부성원 보호주의다. 초기 수사가 부실했다는 지적은 법조계에서 먼저 나왔다. 심지어 가해자의 변호사까지 나서 “상해치사가 아니라 살인이 맞다”고 했고, 검찰 내부에서도 “법무 경험이 없는 검사에게 너무 큰 짐을 안겨 부실을 초래했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김 실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잘했다’고 수사팀들을 토닥였다. 이로도 부족했는지 “수사기록을 유출하고 검찰관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들에겐 응분의 책임을 지울 것”이라고 별렀다.

 또 하나가 군의 인식이다. 김 실장의 글은 지금 군이 혁신 요구를 ‘피해 가면 되는 소나기’쯤으로 치부한다는 것을 보여 줬다.

 군은 여론이 심상치 않자 새로운 수사팀을 만드는 등 초기 수사의 문제점을 인정하는 듯했다. 하지만 김 실장은 딴소리를 했다. 그동안의 조치가 여론 무마용 ‘쇼’였음을 자백한 셈이다.

 김 실장은 지난 3월에도 잠자리 요구 등 에 힘들다며 여군 오모 대위가 자살하자 국방부 기자실에 와서 “언론이 소설을 쓰고 있다”고 한 적이 있다. 가해자의 성관계 요구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신체접촉을 통한 강제 추행을 인정해 가해자의 유죄를 선고했다. 이 때문에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혼나고 사과한 전력도 있다. 지금 군이 주장하는 ‘셀프개혁’이 이런 장성에게 칼자루를 쥐여 주고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유성운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