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상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흰눈이 온 천지를 덮었다.
잡묘의 도시마저 조용히 가라앉은 느낌이다.
이런 때 당송팔대가의 한사람 유종원을 생각한다. 그의 한편 시『강설』은 유난히도 눈의 깊이를 아로새긴다.
『새도 날지 않고 인적마저 끊겼는데 강에 배를 띄워 도롱이 입고 삿갓 쓰고 퍼붓는 함박눈 송이 홀로 낚는 늙은이.』
(천산조비절 만경인종멸 고주사립옹 독조한강설)
한폭의 그림이다. 세상이 온통 백설에 뒤덮여 적막한 속에 도롱이 입은 노인이 삿갓을 쓰고 배를 띄운다. 후세의 수많은 문인 묵객들이「한강독조도」를 그리게되는 유명한 화제가 이 한 시구로 말미암는다.
어제 동지 날 저녁부터 쏟아진 눈이 발목까지 차게 왔다. 늦 퇴근하던 직장사람들의 귀가 길을 막는가 했더니 아침출근길에 자동차들을 기어가게 한다.
도시의「설정」은 이렇게 짜증이요 고통이지만 전원의「고상한 일은 사뭇 목가적이고 아름답기만 해 보인다.
도시의 고통스런「설정」이라도 제3자가 되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또 다르리라. 흰 눈 더미 속에서 이리 비뚤 저리 비뚤 차들이 기는 모양이 재미스럽고 아름답다할까. 한폭 회화인양 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짜증과 고통의 사록을 떠나서 설경을 바라보노라면 역시 누구나 정갈하고 순수하며 장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 아름다운 눈도 또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이 있다.
역시 당대의 대표적 시인 백거이는「금시주반계고아설월화시최억군」이라고 읊는다. 눈과 달과 꽃이 있으면 이것이 가장 아름다운 경치가 아닐까. 거기에 비파와 시와 술이 있으니 흥이 안 날 수 있나.
눈과 달과 꽃이 따로 따로 있어도 아름답거늘 이것이 한데 어울려져 이루어지는 아름다움이야 오죽할 건가.
그러나 그 아름다움도 아름답게 보아주는 사람의「마음」이 없으면 사실은 무의미일 것이다.
눈을 단순히 화학적으로 분석해서「H₂O의 육각결정체」와 같이 파악한다면 거기서도 「아름다움」은 나오지 않는다.
산을 덮고 지붕을 덮고 나무 가지를 덮은 눈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게되는 정감어린 마음과 그것을 관상할 줄 아는「심안」이 있음으로 해서 눈의 아름다움은 있다고 할까.
이 각박하고 모진 엄동설한의 세태 속에서도「아름다움」을 보아 알며 간직할 줄 아는 심성을 잃지 말아야겠다.
더우기 온갖 지저분함과 더러운 이욕을 떠난 정수설백하고 정직무사한 마음이야 더 바랄게 있을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