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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지방 농경민족이 일 건국의 주체|김정학<한국문화연구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일본민족이나 국가의 기원에 대해서 현재 일본에서는 「에가미」씨가 주장한「기마 민족 일본 정복국가 설」이 정설로 통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국가건설에는 가야지방으로 추정되는 한국남부지방의 농경민족이 북구 주로 건너가 지배세력이 되고 이들이 대화지방에서 국가를 건설한 객관적 증거가 많다.
기마 민족 정복 설은 동북「아시아」계의 기마 민족이 남한을 거쳐 일본에 진출하여 선주민족을 정복하여 일본국가를 세웠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기마 민족 설은 일본 기내지방에서 4세기께 고분이 동경·철검·옥류 등이 나오는데 비해 5세기이후 고분에서는 주로 철검·갑 주류 또는 마패 류가 대량으로 나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4세기의 전기고분이 전방 후원 분이고 내부구조가 수혈 식이며 5세기말의 후기분묘도 이와 똑같은 모양이고 ▲전기고분이 통일왕국이 형성되어 강화된 왕권을 상징하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정복과 문화단절을 생각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일본의 농경민족 정복국가 설은 다음과 같은 근거로 설명될 수 있다.
기원전3세기께 일본 북 구주지방에 미생 시대라고 칭해지는 농경문화가 발달했다.
이 시대에 나타나는 토기는 미생식 토기라고 하여 발형토기·호형토기·고배 등 이 있다. 이같은 토기는 당시 한국남부지방 특히 가야지방의 무문토기와 모양이 비슷하다.
묘제에 있어서는 지석묘·우관묘 등 이 북 구주 지방에서 시작되었는데 이와 똑같은 것이 한국남부지방에서 발견됐다.
미생 시대의 농경문화는 수도재배로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토기·석기·묘제 등과 함께 전해진 것으로 보이며 이 시대의 도 종은 너비에 비해 길이가 짧은 이른바 단립 형으로 한국에서 발견된 도 종과 같다.
이같은 미생 시대의 생활문화의 총체는 한국에서부터 건너간 것이 틀림없으며 문화의 전파만이 아니라 상당한 수의 사람이 이주해 간 것으로 볼수 있다.
북 구주지방에 가야지방으로부터 농경문화를 가진 이주민의 물결이 계속되었다면 농업생산력에 의한 부의 축적으로 이들이 쉽게 선주 민을 정복 지배하였다는 추리가 가능해진다.
이같은 정복민족이 4세기 께에 북 구주에서 기내지방으로 진출하여 이 지방의 군소 정치집단을 지배하고 대화지방에 왕국을 건설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건국신화가 태양신화인데 그것은 단군신화나 가락국의 수로왕 신화와 유사하며 특히 수로왕 신화에 더 가까운 것은 일본건국지배세력의 성분을 말해 주는 것으로 가야지방의 농경민족이 미생 시대의 지배세력으로 일본건국의 주체가 된 것을 말해 준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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