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군 개입 위협"으로 살얼음 걷는 폴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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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여름부터 진통을 겪고 있는「폴란드」의 노조자유화운동은 소련의 개입가능성이 높아지면서「폴란드」는 물론 동서관계에까지 긴박감을 주고 있다. 당 조직개편이 끝나고 경제개혁안이 마련되고 있는 가운데 소련이 개입준비를 완료했다는 미 백악관의 발표는 경고 적인 성격을 띤 것이기는 하지만 지난주보다는 개입가능성이 더 짙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지난 8월「폴란드」북부공업지대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절정을 이루었던 위기는 당시 소련에 무력개입구실을 주지 않으려고 현실적으로 대처해서로 양보했던 정부·노동자들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수습됐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당시 정부·노조지도자들은「폴란드」위기가 정치적이라기보다는 경제적인 성격을 띤 것으로 수습방향을 잡아 불길을 잡았었다.
그러나 「폴란드」의 위기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치제도 등 사회구조전반에 걸친 비리에서 움튼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사그라 든 것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8월에 단행된 당·행정부의 개편은 얼핏보기에 노동자들의 의견이 대폭 반영된 것처럼 보였으나 당 제1서기에 임명된「카니아」를 비롯한 핵심적인 인물들은 거의 친소노선에 가까운 성향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12월초로 예정된 공산과 중앙위원회 총회를 앞두고 노조지도자와 당 지도자들간에 있어 왔던 정책조정 협상은 당초 약속이나 기대와는 달리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쪽으로 진행돼 왔다. 처음에 공산당지도자들이 노동자들에게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은 일단 과열상태를 진정시킨 뒤 시간을 벌어 가며 그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정부가 일부 노조지도자들을 구금하는 등 당초의 약속을 어기자 11월말에는 산발적으로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나는 등 다시 조직적인 전국파업기미까지 보이게 됐다. 「바르샤바」의 한 강철공장의 노조원이 국가기밀서류 유출혐의로 체포되면서 이틀동안 계속됐던 「후타·바로즈·사바」강철공장의 파업은 「폴란드」의 자유노조로 하여금 전국 총파업령 결정을 내리도록 했었는데 「폴란드」정부가 구속인사를 석방하고 노조지도자인「레흐·발레사」의 자제호소로 취소됐었다.
지난여름의 파업을 지도했던「레흐·발레사」는 노동자들의 자제를 호소하며 사태가 악화될 경우 정부군의 투입과 외국의 개입이 예견된다고 말하면서『닥쳐올 보다 큰 투쟁을 위해 힘을 모험에 걸지 말자』고 촉구했다. 「폴란드」사람들에게「외국의 개입」이란 바로 소련군의 무력개입을 뜻하는 것이므로 노동자들은 그의 호소를 받아 들었다.
그러니까 최근 소련을 비롯한「바르샤바」동맹군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는 것은 며칠 전 끝난「폴란드」공산당의 개편과 연관지어 보아야 할 것이다.
당 지도부 개편과 새로운 경제개혁안을 다루었던「폴란드」당 중앙위원회는 일단 공산주의 체제고수원칙을 다짐했으나 자유노조를 완전 굴복시키지는 못했다.
이 회의를 소련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하기 위한 압력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 소련군이 개입결정을 내린 것 같지는 않다. 소련군의 개입가능성이 항상 있기는 하지만 그럴 경우 소련이 치러야 할 현실적인 대가-서방과의「데탕트」, 서방의 반발, 제3세계의 불신 등-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워싱턴·포스트」가 미 정부관리의 말을 인용하여 분석하고 있듯이 소련의 개입여부는 지난주에 끝난「폴란드」공산당 중앙위원회 결과분석과 그에 대한「폴란드」국민들의 반응이 드러날 때까지는 결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의 추이는 소련이 군사개입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폴란드」의 노조사태는 경제적 차원을 넘어서고 있는 것 같다.
「폴란드」노조의 요구가 정치적 차원으로 비화돼 공산체제가 위협받는다고 판단될 때에 소련이 개입하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김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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