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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2) 경기 80년-제71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938년 4월, 백악의 새 교사가 낙성되면서 제일고보가 새 배움터에서 새 마음, 새 뜻으로 다시금 새 출발을 다지고 있을 무렵, 이와는 달리 밖에서는 차차 차갑고 거센 바람이 불기 시각하고 있었다.
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대륙진출을 개시한 일본은 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그 세를 더욱 강화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조선을 대륙침략의 병참기지로 만들려는 일제의 탄압정책도 더욱 악랄해지기 시작했다.
또 일제는 조선에 대한 물질적 수탈만으로는 부족, 인적·정신적 수탈까지 감행했다. 37년 말부터는 내선일체·일친동인이라는 허울좋은 「슬로건」을 내걸고 조선인의 머리 속에 일본 혼을 집어넣기 위해 광분했다.
소위「황국신민의 서사」라는 것을 만들어 학생은 물론 일반국민들에까지 강제로 외게 하고, 육군특별지원병제라는 것을 만들어 젊은이들을 강제로 전쟁터로 끌어가는가 하면, 국민 총동원 운동을 벌여 본격적인 전시 체제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40년에는 이미 시행해왔던 「국어상용」을 의무화하고 동아·조선 두 신문을 폐간하더니, 드디어는 창씨개명이라 해서 우리 나라 사람들의 성명 삼자마저 빼앗고 말았다.
이처럼 일제의 식민통치가 바야흐로 공포정치의 양상을 띠기 시작할 무렵, 일제는 이를 교육제도로서도 뒷받침하기 위해 38년 4월 새로운 조선교육령을 공포했다.
이에 의하면, 그때까지 한국인이 다니던 보통학교·고등보통학교·여자고등보통학교는 그 명칭을 일본인이 다니는 학교의 명칭, 즉 소학교·중학교·고등여학교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려나 이같은 명칭상 차별폐지의 이면에는 한국인을 보다 철저히 일본인화 한다는 저의가 숨어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새 교육령이 우리말 교육을 폐지시켜버린 것(형식상으로는 「종용」이었지만)을 보면 알 수 있다.
새 교육령은 제일고보에도 큰 변화를 가져 왔는데,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그때까지 불러왔던 제일고보의 교명이 경기공립중학교로 바뀐 것이다.
당시 총독부 학무 당국은 공립고보의 교명을 중학교로 바꾸는데 있어 상당히 고심한 흔적이 있다. 그 지방에 한국인을 위한 고보만 있고 일인 중학이 없을 경우엔 개명이 매우 손 쉬어서, 예를 들어 춘천고보는 춘천중학으로 바꾸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 지방에 이미 지방명을 딴 고보와 중학이 있을 땐 개명이 순조로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인중학의 교명을 그대로 두고 한국인을 위한 고보는 학교가 있는 위치에 따라 동서남북을 붙여 동중·서중…하는 식으로 이름을 붙였다. 신의주고보가 신의주동중으로, 광주고보가 광주서중이 된 것이 그 예다.
또 도의 이름을 딴 경우도 있었다. 제일고보의 경우가 이에 속하는 것으로 경기도의 경기를 따서 경기중학이 되었는데 제일고보는 이에도 따를 수 없어서 경복궁 옆에 있다 해서 경복중학이 됐다. 이때 함흥고보는 함남중학, 대구고보는 경북중학이 됐다.
그러나 유독 평양에서만은 일인 중학교가 평양일중이 되고, 평양고보는 평양이중이 됐는데, 화가 난 평양고보 학생들은 밤중에 평양일중의 간판을 떼어내 버림으로써 분을 풀었다고 한다.
둘째는 우리말 교과목이 없어지는 바람에 13년간 근속해온 이주연 선생이 학교를 떠나게된 것이다. 당시 제일고보에는 한국인 교사로 이관섭(수학), 채관석(영어), 김주경(도화), 정형용(한문) 선생과 배속장교로 이강우 소좌가 근무, 전 교원 40명의 1할을 겨우 넘을 정도여서 이선생의 퇴임은 여간 섭섭한 일이 아니었다.
그후 다시 한국인 교사 수는 늘었으나 그것은 출정한 일인교사들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그리고 일인교사를 구하기 어려운 데서 할 수 없이 취해진 임시적인 조처였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새 교사를 마련하는데 공이 컸던 「와다」(화전) 교장이 물러나고 38년 10월 「이와무라」(암촌준웅) 교장이 새로 부임한 것이다.
그는 일찍이 일본의 명문 동경고사를 졸업하고 1910년대에 우리 나라에 나와 총독부의 친학관으로서 신 교육령 제정에 깊이 간여했던 사람인데, 일인으로서는 비교적 양식 있는 교육자로서 학교운영에 대단한 열의를 보여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인 사람이었다.
이처럼 1938년은 경기로서는 앞으로 크나큰 변화를 예고하는, 종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로 향하는 분수령과 같은 한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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