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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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느덧 벽에 걸린「캘린더」에 마지막 한 장만이 남았다.
12월. 파란만장한 올해도 드디어 저물어 가는 것이다.
12월의 첫날. 전국에는 저기압이 깔려 하늘은 잔뜩 먹물에 젖어 있었다.
그렇잖아도「에밀리·브론티」는『황량한 12월』이라고 노래했다.
「키츠」도 또『음산한 밤과 같은 12월』이라고 노래했다.
12월에 어울리는 음악은 아무래도 서글픈 단조의 가락이라야 한다.
촉촉이 가슴속 깊이 스며드는 어둔 안개처럼, 온갖 꿈이며 정열을 냉각시키듯 온 몸을 적셔 놓은 겨울비처럼 비 창한 여운을 남기는 노래라야 한다.
사라져 가는 것은 어느 것이나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이별을 고한다는 것은 어느 때에나 서글픈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에서 끝이 있다. 끝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그저 부질없는 인정일 뿐이다.
우리는 꼭 비몽사몽간에서 살아가는 것만 같다. 이승 자체가 꿈이다. 우리가 산다는 것도 꿈과 같은 얘기다.
이렇게 생각하면 굳이 사라져 가는 것을 서글퍼 할 필요는 없다. 꿈속에서는 아무리 눈뜨고 있다 해도 역시 꿈속일 뿐이다.
꿈속에서 아무리 소중한 것이 사라진다 해도 꿈만 깨어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모든 게 꿈이라 치 면 슬퍼할 것도 없고 기뻐할 일도 없다.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한해의 마지막 달이라 해서 걸음을 멈출 수도 없는 것이다.
인간은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어느 선승이 말한 적이 있다.
어떠한 고통이나 불행도 하루뿐이라고 생각하면 견디기 쉽다. 행복도 오늘 하루뿐이라면 여기 빠지지 않는다.
오늘을 노는 것도 오늘 해야 할 일을 오늘 못해도 내일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 않은 것도 효도할 기회는 앞으로 얼마든지 많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생은 하루살이라는 생각으로 살아 나가는 하루하루가 쌓이면 어느덧 1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한다.
새해에 모든 걸 미룰 일이 아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에 미련을 둘 것도 아니다. 그저 이 마지막 한 달을 살아가는 것이다.
마지막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기나긴 암야 행로에도 끝은 있다. 12월이 있듯이.
『내일에는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이렇게<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것을 잃은「스칼레트」는 중얼거린다.
이렇게 마음을 굳게 먹고 살아가면 지난 한해의 모든 슬픔이며 쓰라림을 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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