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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원희룡 제주도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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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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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안도현(1961~ ) ‘연탄 한 장’ 중에서

이 시를 읽는 순간, ‘아차!’ 했다. 재가 된 연탄 한 덩어리에서도 삶의 지혜를 읽어 노래하는 시인의 통찰이 깨달음을 줬다.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아침에 산산이 으깨져 길 위에 뿌려질 수 있는 그런 연탄 한 장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곤 한다.

 돌이켜 보면 살아오는 과정에서 고통도 없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가난을 이겨내고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대학에 1등으로 들어갔지만 내게 다가온 것은 군부정권의 독재와 억압이었다. 일당 2900원을 받으며 철공소 직공 생활도 해 봤다. 성숙한 사람은 타인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이다. 현실의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 내 정치의 출발이다.

  도지사 선거 과정과 당선된 뒤, 제주의 182개 마을을 돌며 도민들의 가슴속 이야기를 들었다. 도민들 아픔과 고통을 함께하는 게 내가 가진 것을 돌려드리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완소남’이라는 별명을 좋아한다. ‘완전 소중한 남자’가 아니라 ‘완전 연소를 꿈꾸는 남자’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우리 인생이 완전 연소되면 내가 가진 것, 내가 소망하던 것, 내가 품었던 원망과 불만들까지 모두 내 인생의 행위를 통해 완전히 불타서 곱고 하얀 재가 된다. 이 연탄재는 다음에 오는 누군가가 눈길에 미끄러지는 것을 막아 주고 그 발밑에 밟혀 발판이 되어 준다. 또 다른 삶으로 이어지는 연탄재의 힘!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원희룡 제주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