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s party

중앙일보

입력

최근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남자들의 파티’가 이슈다. 서울 신사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조휘(맨 왼쪽)씨와 대학 동창들이 파티를 즐기고 있다.

 "남성 커뮤니티 문화 진화 거창한 장소, 요리 필요 없어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 나눠"

 과묵한 남성들의 시대는 지나갔다. 패션과 미용에 관심이 많은 그루밍족, 자유로운 사고와 트렌디한 생활을 추구하는 꽃중년이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관계를 돈독히 한다. 커뮤니티 문화의 한 현상으로 ‘남자들만의 파티’를 여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스튜디오, 테이블 위에 핑거푸드와 샴페인이 놓여 있다. 테이블 곳곳에 독특한 모양의 캔들이 작품처럼 장식돼 있고, 작은 선물 상자가 쌓여 있다. 네 명의 남자가 해변에서 서핑보드를 들고 찍은 사진이 스크린을 채운다. 대학교 축제 사진, 친구들과의 파티 현장, 여행 사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가운데 세미 슈트에 보타이를 맨 남성들이 대화를 이어간다. 학창시절 에피소드와 최근 비즈니스 흐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분위기는 고조되고 이따금 중저음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비정상회담' 등 남성 중심 토크 프로그램 인기
 최근 JTBC의 ‘비정상회담’이 인기다. 세계 11개국 출신의 남성들이 출연해 각국의 문화를 비롯, 자신들의 생각을 대화로 풀어낸다. ‘나혼자산다’ ‘핫젝갓알지’ ‘마녀사냥’까지 남성 패널을 중심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도 주목받고 있다. 방송 직후 그들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연일 검색어 순위에 오른다. 지난 8일 정규 편성돼 첫선을 보인 ‘나는 남자다’ 역시 큰 반응을 얻었다.
 남성이 출연해 그들만의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이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남성들의 생활과 생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시시껄렁한 에피소드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이어가며 사뭇 진지하게 의견을 공유한다. 꾸밈없이 남자 스타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친밀감을 전달한다.
 프로그램 속 남성 패널들의 자유로운 대화는 일반 남성들의 생활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대화를 나누기 위해 특별한 자리를 마련하고 프라이빗한 공간을 빌려 소소한 파티를 열기도 한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는 저서 『남자의 물건』에서 “관계에 치이는 남자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은 ‘이야기’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나를 구성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때 삶은 즐거워진다”고 말한 바 있다.
 거창한 장소나 음식은 필요없다. 간단한 핑거 푸드와 샴페인·와인 등을 맛보며 그들만의 ‘파티’를 즐긴다. 먹고 마시는 ‘술판’이 아니라 격식과 분위기를 갖춘 파티가 남성들의 커뮤니티 문화를 한 단계 진화시키고 있다.
 정기적으로 동창 모임을 갖고 있다는 조휘(27·라비에즈 대표)씨는 “남자들의 파티라고 하면 예전에는 ‘술’과 ‘포커’ ‘자욱한 담배 연기’가 떠올랐지만 최근에는 분위기를 맞춰 공간을 세팅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테마에 따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등 건전한 분위기로 진행된다”며 “사회적인 이슈나 이성과의 만남, 장래에 대한 비전에 대해 솔직하게 나눌 수 있어 편하다”고 말했다.

컨셉트 분명하게, 즐길거리 충분히 준비해야
 남자들의 파티와 여자들의 파티는 어떻게 다를까. 여성을 위한 파티의 경우 드레스 코드와 테이블 세팅, 공간 데커레이션 등 비주얼에 중점을 두는 편이다. 남성의 경우 파티 분위기를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액티비티 등 즐길거리에 비중을 둔다.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휴대용 보드 게임이나 체스, 다트 등이 있으면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데 도움이 된다. 남자들만의 승부 근성을 발휘하며 게임에 몰입하다 보면 파티가 훨씬 흥미로워 진다. 남녀가 함께하는 파티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컨셉트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가벼운 일상 대화를 나누고 달콤한 칵테일을 마시며 춤을 추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파티 문화가 익숙지 않은 남성들끼리 파티를 여는건 조금은 낯선 일이다. 섣불리 파티를 열었다가는 술만 마시다 끝날 수도 있다. 계획이 필요하다. 경제 상황, 경영, 계약 등 업무 이야기가 수시로 등장하는 비즈니스 모임의 경우 파티 시간과 컨셉트가 더욱 중요하다. 파티 스타일링 회사 ‘마지아앤코’ 김유림 대표는 “왜 모이는지, 어떤 사람들이 초대되는지에 맞춰 테마를 정하고 이에 맞춰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동창 모임이라면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장소나 음악을 메인 테마로 한다. 비즈니스 모임이라면 게스트들이 부담되지 않도록 전체적으로 심플하게 공간을 연출하는 게 좋다.
 파티하우스 '더 퀸 by 라리'의 박근영 이사는 “남자들의 파티에서도 드레스 코드와 테이블 스타일링이 잘 갖춰져 있으면 파티 분위기는 한층 고조된다. 바지·신발의 색상 또는 종류만 맞춰도 센스 있는 파티룩이 완성된다. 테이블 위에는 남성들의 관심 제품인 프라모델이나 미니 카 오브제를 놓으면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수 있다”고 조언했다

<글=유희진 기자 yhj@joongang.co.kr, 사진="김현진" 기자, 스타일링="김유림(마지아앤코" 대표), 장소 협조="더" 퀸 by 라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