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소망」이룩한 이태규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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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백발의 노안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소) 고문직사임과 함께 사택을 비우라는 통고를 받고 지난 60여일동안 수심에 잠겨 밤잠까지 설쳤던 원로과학자이태규박사(60).
『7년동안 정들었던 현재의 사택에서 계속살면서 여생을 조국품에서 연구생활로 보내고 싶다』는 그의 「조그마한 소망」이 이루어지던날, 노박사부부는 어린애처럼 두손을 마주잡고 기쁨에 들떴다.
『대통령과 조국에 감사할따름입니다. 어려운때에 구석구석까지 관심을 기울여 이늙은이에게까지 특별배려를 해주시니….』대통령의 특별지시에 고마움을 말하는 이박사는 맺혔던 응어리가 풀어지는듯 잠시 말문이 막혔다.
『더살아봤자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과학발전과 후진양성에 마지막 정열을 다바치는게 조국에 대한 보답이겠지요.』
이박사는 자신이 평생동안 헌신해온 표면화학촉매작용·점성학(점성학)·반응속도론등 요즘 젊은 과학도들이 외면하는 순수이론화학에 더욱 정진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박사부부가 주거문제로 어려움을 겪고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중앙일보에 보도된 것은 지난달31일(7면).
이보도를 통해 이박사의근황을 알게된 전두환대통령은 3일 오명경제비서관과 KIST부소장 김춘수박사를 직접 이박사에게보내 실정을 듣게하고 희망하는 주택에서 살수있게 하는등 최대한의 배려와 지원을 하도록 지시한것.
윈로과학자에 대한 이같은 관심은 곧 우리나라 과학발전을 위해 그늘서 묵묵히 헌신해온 후배 과학자들에게도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이기에 이박사의 기쁨은 더욱 크다.
그 기쁨에 관절염을 앓고있는 다리의 통증도 잊은듯 서재로 통하는 2층계단을 거뜬히 오른다. 연구논문을 쓰면서 숱한 밤을 지새웠던 그의, 고뇌와 보람이 어린 2층 서재. 창문을 열면 도봉산준령이 눈앞에 펼쳐진다.
지난7년동안 이렇게 좋은 환경에 있게 해준 KIST측에 그는 언제나 감사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거취문제로 다소 물의를 빚었던점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한다.
KIST는 그가 지난 작년부터 고문으로 관여해온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사색히고 연구하는 것』그것은 과학자의장수의 비결도 되지요.
우리나라 과학자의 연구수명이 너무 짧음을 지적하는 그는 생명이 다하는날까지 연구논문을 쓰겠다고 말한다.
『순수과학에 대한 이론적기초없이 과학발전을 기대할수없어요. 우리나라는 너무 응용과학분야에만 치중하는것 같아요.』
응용과학을 해야 우선 생계문제가 해결되니까 순수과학을 멀리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학문하는태도에 질타를 가하는 그는 이미8순노인이 아니다.
이 조용한 정열로 그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듯이 여생을 끊임없이 사색하고 연구하며 살아갈것처럼 보였다.
한편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 과학계인사들은 하나같이 반가운 표정.
노봉환교수 (고대·이과대학장)는 『이박사가 우리과학발전에 남긴 업적에 비추어 당연한 결과』라면서 『해외과학자의 유치못지않게 중요한것이 그들에 대한노후대책』이라고 말했다.
또 권속숙교수(이대·화학과)는 『지금까지 음지에서만 일해온 과학자들에게 국가적 차원의 배려가 계속 있어야할 것』이라고말했다. <김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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