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7000만원 넘으면 '현오석' 세금폭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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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8000만원을 받는 20년차 직장인 강모(48)씨는 지난주 정부가 내놓은 ‘최경환(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표 세법개정안’에 기대를 걸고 있다. 허리띠를 졸라 퇴직연금 300만원을 더 부으면 연말정산 때 돌려받는 세금이 좀 늘어날 것 같아서다. 하지만 현실은 강씨의 기대를 저버릴 가능성이 크다. 내년 초 하는 2014년도분 연말정산은 중산층 이상의 세금 부담을 크게 늘려 놓은 ‘현오석(전 경제부총리)표 세법’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중·고생 두 자녀를 둔 4인 가족 가장인 강씨가 내야 할 세금은 올 2월(2013년도 연말정산) 616만원에서 내년 2월(2014년도 연말정산) 724만원으로 108만원 늘어난다. 최경환표 연말정산이 적용되는 2016년 초에도 이 액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다만 공제한도가 늘어난 퇴직연금을 한도(300만원)까지 추가 불입하면 세금 증가액이 72만원으로 다소 줄어든다.

 본지가 하나은행 상속증여센터, 한국납세자연합회와 함께 해 본 2013~2015년분 모의 연말정산 결과다. 이에 따르면 연봉 7000만원이 넘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은 이번에 늘어난 퇴직연금 공제 한도를 다 채워도 ‘현오석 증세’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봉과 맞벌이 여부, 자녀 유무 등에 따라 추가로 부담하는 세금이 다소 달라지지만 증세라는 흐름에선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연봉이 이에 못 미치는 사람들은 ‘현오석표 증세’의 영향에서 벗어나거나 감세혜택을 더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현오석표 세법’의 골간을 최경환 부총리 체제에서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박근혜 정부 1기 경제팀은 과세의 틀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꾸는 세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연금저축과 의료·교육비로 공제받을 수 있는 금액이 크게 줄어 저소득자 부담이 줄고 고소득자 부담은 커졌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2기 경제팀도 이런 세액공제 방식을 그대로 두고 일부 공제항목만 추가했다. 퇴직연금 세액 공제 한도를 연 300만원 추가하고 청약저축 한도를 연간 120만원에서 240만원으로 확대한 것 등이다. 하나은행 상속증여센터 김영림 세무사는 “연봉 7000만원을 초과하는 사람은 일단 내년 세금이 크게 늘고 이후에도 근로자가 연금 불입액과 저축을 늘리지 않으면 줄어들지 않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반면 연봉 7000만원 이하인 사람들은 최경환표 세법으로 증세에서 감세 대상이 되거나 감세 혜택을 더 크게 누릴 수 있게 된다. 연봉 4000만원을 받는 4인 가구 가장의 세금은 올 2월 연말정산 때 17만6200원에서 내년 2월 10만500원으로 크게 줄어든다. 그가 퇴직연금을 300만원 추가로 붓고, 주택청약종합저축 불입금을 120만원에서 240만원으로 늘리면 2016년 2월 연말정산 땐 세금 한 푼 안 내고 33만1500원을 지원받는다. 연봉이 같고 자녀가 없는 맞벌이 2인 가구의 경우 ‘현오석 세법’에 따르면 2013년 153만5500원에서 2014년 167만5500원으로 세금이 소폭 늘었다. 하지만 내년부터 퇴직연금과 청약저축을 각각 300만원과 120만원 추가 불입하면 2015년 세금을 124만3500원으로 줄일 수 있다.

 이런 결과를 두고 전문가들은 “가계 내의 양극화 해소라는 측면에서는 맞는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가계소득을 높여 소비와 내수를 활성화한다는 취지와 부합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을 표시했다. 한국납세자연합회 명예회장을 겸하고 있는 인천대 홍기용(경영학) 교수는 “정부가 저축하는 가계에 혜택을 늘려 주는 ‘가계절약 세제’를 내놓고 가계소득 증대는 기업에 맡긴 모양새”라며 “세제혜택도 그다지 늘지 않아 소비가 늘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소득공제와 세액공제=소득공제는 세금을 부과할 기준소득을 정할 때 전체 소득에서 각종 금액을 공제하는 방식이다. 의료비나 교육비, 보험료 등 특정한 지출 항목을 과세대상 소득에서 제외한다. 같은 금액을 소득공제하면 높은 소득세율을 적용받는 고소득층의 절세 효과가 크다. 반면 세액공제는 소득 전체를 과세 기준으로 삼아 세금을 계산한 뒤 쓴 돈의 일부를 돌려주는 방식이다. 근로소득이 적은 저소득자보다 고소득자의 부담이 커진다.

조현숙·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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