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최선의 선택 위한 테크닉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 강일구

이것이 최선일까?

결혼·이사·직장과 같이 큰 사안을 앞두면 고민은 더 커진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여성이 좋은 배우자감을 찾는 일일 것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최선의 배우자 조건’을 본 적이 있다.

‘키 180㎝ 이상, 고소득 전문직, 장남보다 차남, 같은 종교, 가능하면 시부모는 외국 거주.’

이런 사람이 어디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살아생전에 만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하여튼 이 정도는 돼야 최선이라 할 만하니 참으로 좋은 신랑감이 되는 길은 험난하다. 이사를 하려고 집을 알아볼 때도 그렇다. 학군과 교통이 모두 좋고 전망도 기막히며 위·아래층에 아이들이 살지 않아 층간(層間) 소음이 없으면서 가격도 급매로 싸게 나온 곳을 원한다.

이렇게 많은 조건들을 고려하다 보니 선택을 앞두고 머리는 복잡해진다. 그만큼 최선의 선택을 추구하는 것은 어렵다. 최선을 선택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후회를 할 것 같아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은 내리지 못하고 고민만 하다 타이밍을 놓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대개 막판에 몰려 선택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매번 시간이 지나면 실망스런 일들이 발생한다. 앞으론 더 열심히 고민을 해서 최선을 선택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필자는 늘 최선의 선택을 원하는 사람에게 생각의 전환을 권하고 싶다.

선택이란 간단하게 보면 딱 네 가지다. 최선-차선-차악-최악. 출발점에 서 있을 때 모든 변수를 감안해서 최선이라 여겨지는 것을 선택해도, 진행 과정에 많은 일들이 벌어지기에 결승점에 왔을 때는 상황이 달라지기 일쑤다.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변수가 상당한 문제점이 될 수 있다. 거기다 많은 고민을 했던 일일수록 들어간 마음의 비용이 크기에 기대도 크고, 그만큼 실망도 크게 느낀다.

그러니 최선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고 소모적이다. 그보다는 ‘최악이 아님을 확인하는 것’을 먼저 하기를 권한다. 일단 ‘이건 절대 아니다’ 싶은 것을 배제하는 쪽으로 생각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예를 들어 좋은 배우자라면 ‘연애 기간에 구타를 한 전력’ 같은 치명적 조건이 없어야 한다. 내 경험으론 고치기 어렵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해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그러고 난 다음 남는 것은 ‘차선 혹은 차악’이다. 당연히 차선을 선택하면 될 것 같지만, 그것도 아니다. 여기선 둘 중 마음이 더 가는 느낌을 기준으로 선택한다. 차악이라 하더라도 좋은 느낌이 드는 것을 골라야 한다. 중간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호감이 가는 부분을 갖고 있어야 견뎌내며 끝까지 완주할 수 있다. 이렇게 끝까지 가보면 결국 마지막에 다다라 ‘이게 최선이었구나’라고 결론을 내리고 만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저런 문제점이나 실망한 것들도 있었지만 최악은 아닌 상황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해냈다는 것은 큰 만족감을 안겨준다. 스스로도 결국 이게 여러 정황 속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인정하게 된다.

우리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최선인지 아닌지 헷갈려하고 너무 많은 변수들만 고민하면서 실제로 선택과 실천은 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최악이 아닌 것만을 확인한 뒤 마음 가는 것을 골라 그냥 끝까지 가보자. 그것이 실제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jhnha@naver.com